곡성: 곡하는 소리
비 내리는 것을 정말 좋아했던 우리
비가 내리는 것을 정말 좋아하던 당신이었다.
내리는 비를 맞다 보면, 꼭 내가 지은 죄가
씻겨 내려가는 듯해서.
이 원망스러운 하늘이 그리고 이 땅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비가 내리는 오늘, 그런 당신 생각이 났다.
청춘을 보냈어야 할 시간에
청춘을 즐기지 못하고,
마음 아프고 잔혹한 일들만 겪었을 당신에게
내 청춘을 함께하자 이야기했다.
내 청춘을 함께하며 당신의 여백을 채워보자고.
파랑성이 들리는 듯했다.
수차례 바다에 뛰어내리기를 실패했던 내 귓가에
삐ー• 소리도 잠시, 아른하게 머무는 파도의 소리가
일렁이는 듯 들려왔다.
사랑하고 싶었던 내가 차마
당신에게는 구애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랑 일부를 떼어
당신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다.
보이는 결핍을 없애고
당신의 삶은 유복하고 축복이라며
과거는 과거대로 묻어두고서,
행복하고 사랑이 가득한 현재로
가득하게 해주고 싶었다.
머리를 너무 많이 맞아
뇌진탕이 온 듯 어지럽고,
뜯겨나간 머리 위에 고름이 차서
멍든 듯 아려오고,
당신이 쏘아보는 눈빛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던 내가
나를 향해 겨눈 칼을 보고서
내 마음이 전해지지 않은 탓이겠구나.
스스로를 책망하고 좌절했다.
이곳저곳이 아파 도망치듯 나온 집에
다시 돌아가고플 만큼,
당신이 나를 때리고, 또 때리고 수없이 때리길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 이유를 당신 아닌 내게서 찾아보려 애썼다.
핏줄이 터져 꽉 찬 피에 보이지 않는 왼쪽 눈에,
한 마디를 하면 두 대를 맞고, 세 대를 맞아
말하려 입을 떼기에 퉁퉁 부은 입술로
몰골이 엉망이 되었어도,
사실, 실망보단
어쩌면 안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혐오스러운 내 일생에 찾아와 준 당신에게
예외가 있을 리가. 그저 혐오스러운 일생에
혐오스러운 나를 만나
불운을 눈앞에 직접 보고 마주하고서,
역시, 예외가 있을 리가.
하고서 구역질을 했다.
한때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이대로 가다 보면 당신과 행복할 수 있겠지?
행복, 뭐 별 거 있겠나?
하며 행복을 저만치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
정말 가까운 곳에 있다고 잠시 착각한 내가
너무나 작고 우습게 느껴졌다.
내게 어떠한 위로도, 미안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어제부터 은은하게 들려오던 파랑성에 다가가
다신 돌아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일말의 죄책감 마저 전부 땅에 흘려보내고
조용히 나를 추억할 수 있는 저 바다로 가고 싶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한 번쯤 죽고, 한 번쯤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인간에게 죽음이라 함은,
영원한 이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요.
이 세상에 실재하지만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아 숨 쉬고 있는가.
삶 자체에 방황하고
존재에 의심을 하는 것 또한
죽음이고 부활의 과정이다.
인간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이 세상은 떠났지만 줄곧 영원한 작별이 아니며,
바다 위에서 나눈 마지막 인사는
평생토록 떠나간 이를 그리울 수 있는 희망이며
바다는 마지막까지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그곳에서 떠나간 영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원할 때면 안부를 물을 수 있다.
이곳에 떠나간 것은 영원한 죽음이자 작별이 아니며,
바다의 오랜 영생은 추억을 선물할 것이니.
추억을 돌려주는 아름다운 바다여.
흐려지는 기억 속에 썩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남을 추억이여.
만지지 못하고 손에 닿지 않는 것이 이별이 아니고,
내 마음에서 놓아주는 것이 곧 이별이 되겠다.
바다에 쏟아부은 아름다운 누군가,
바다 앞에서 다른 누군가는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으며, 추억을 기릴 테지.
/
매서운 파도였다.
다가가기에 두려운 파도였다.
파랑성에 내 목소리 섞어,
함께 인사를 나눈다.
무슨 말을 할지 아는데,
혐오스러워하기보다,
너무 슬퍼 미치겠다는 듯 바라봐줘요.
내 몸이 떠오르면 꽃을 던져주고
언제든 안부를 물어보려 나에게 찾아오고,
전부 다 괜찮아졌을 무렵에,
내가 이 파랑성보다 먼저 잊혀질 무렵에는
다시는 날 찾아오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