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섬세함이라 부르기로 했다
잘 살아야 한다던 어머니의 말은
그냥 살아만 있어 달라는 문장으로 바뀌고,
네가 흔들릴 때, 나만큼은 차분해야 하지 않겠냐며
일찍이 무르익은 새싹이 내게 말했다.
내가 내색하지 않았어도,
나도 함께 힘들고 마음 아팠다고.
그렇지만 나는 네가 나만큼 일찍 성숙해서
예쁜 열매가 빨리 터지지 않길 바란다고.
나를 바다에 데려갔다.
그토록 가기 싫었던 바다에
제발 좀 같이 가달라길래
원래 그런 부탁도 재촉도 하지 않던 사람이라
이 사람의 마음에도
파도가 치고 있구나. 생각했다.
내가 죽고 싶었던 바다에서
자신이 바라보며 사는 세계에 대해 소개해줬다.
나는 이맘때쯤 바다에 오기도,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며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산다고.
신기했다.
나랑은 다소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아서.
고마웠다.
자신에게 치고 있던 파도를 잠시나마 귀띔해 줘서.
그래서 눈치챘다.
꼭 내게 조금만 더 힘내서
살아달라 부탁하는 듯했다.
마주 앉아 함께 본 바다는 새카맣게 어두웠다.
마치 그 안에 망령들이 잠겨있을 것 같았다.
시체 한 구가 떠내려와도 놀랍지 않을 만큼
그날의 파도는 매섭게 쳤고,
파도를 계속 바라봐보니
그토록 무섭게 치던 파도도
금방 잔잔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다 나중에는 한바탕 지나가버릴 거라는 거다.
파도가 모여 잔잔한 바다가 된다는 말처럼
파도를 더러 고난과 역경이라 한다면,
다 금방 지나가 없어질 일이라는 거다.
내가 투신해 죽으려 했던 바다가
포근하기보다 무서웠어서 다행이다.
아직 무서워해서 다행이다.
나를 다시 모래사장으로 밀어주어 고마웠다.
고마워 나의 푸른 새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