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ations on the Canon
캐논변주곡: 인정과 수긍의 시간
아주 오래전 이야기 같지만,
사실 무엇보다 바래왔고
그 어느 것보다 오래된,
줄곧 내 소원이었던 것이 생각났다.
기억에 굳은살이 생기는 바람에
겨우 떠올렸다.
이 아픔을 아무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고통이 나로 충분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아프기 시작했던 어느 날부터 꾸준했다.
내가 살아내는 동안 어른에게는
고통이 없는 줄 알았다.
어른이 되면 아픔도 없는 거구나.
잘 살 수 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하루빨리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빌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면 아프지 않을 수 있고,
덤덤해질 수 있는 줄 알고서
죽음 앞에서 어떤 놀람도, 몇 방울의 눈물도
어른이 되면 덤덤해질 수 있는 줄 알았다.
방심하고 있을 때 내 안에 잠겨있던 우울이
결국 수면 위로 떠올라서 나를 힘들게 해도
어른이 되면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사실 그건
사랑으로만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런저런 아픔들도 결국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었고,
무탈히 지나갈 수 있었다는 것을
내가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토록 단단한 줄만 알았던
나의 아버지 마음에
우울이 닿았을 때 끝내 수긍했다.
어른도 아픔을 알고,
고통 앞에서 여전히 쓰라리고,
죽음 앞에서 늘 놀랄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구나.
/
나는 "어른은 강하다"라
일반화할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어른들과 살아왔기에,
어른에 대한 환상이 컸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이 세상에 괜찮은 어른은 없다.
아프지 않은 어른은 없다.
도리어 어른이 더 약하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어린 '나'에게 책임감이라는 살이 붙으면
하루빨리 등 떠밀리듯 어른이 되려
애써가면서까지 노력할 것 같다.
그때 정의한 어른은 강하고,
용감하고, 감정에 기복이 없으며
꿈보다 현실 가까이에 살고 있으며,
책임져야 할 무언가에 의해
강할 수밖에 없는 사람.
나는 내 마음에 병이 들어 병원에 갔을 무렵에
나의 아버지는, 나의 어머니는
그리고 나의 언니는
이렇게 병원에 올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고,
하나하나 수를 세기에도 많은 양의
서로 다른 약을 한꺼번에 집어삼킬 때에도
내 사람은 이런 약을 먹지 않고도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다른 치료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고,
아직 내가 감당하기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시간이 흘러도 내 머리맡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당신들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내가 대신 다 감내하겠다고.
그래서 내 인생은 이토록이나 힘들고 별난 거라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근데 왜,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 아빠 마음에 병이 들었을까
내가 아빠 몫까지 전부 대신 힘들어했는데
내가 아빠 몫까지 우울해하고 고통스러워했는데
그래서 이제 청춘이 찾아오리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왜 내 기대에 빗나가서 아빠가 이토록 아픈 걸까
'책임감'으로 억누를 수 있었던 잠긴 우울이
아빠를 괴롭히는 걸 보아하니,
이제 그 책임감의 주인은 바뀌었고,
아빠는 더 이상
무리해서 어른이 아니어도 되나 보다.
그러니까, 아빠는 이제 쉬어도 된다.
엄마는 쉬어도 되고, 언니도 쉬어 마땅하다.
내 사람은 쉬어도 된다.
그중에서 아주 작은 바램을 잊지 않고 가져보자면,
결코 병원과 색색의 알약들이
당신을 치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밖에 답이 없게 된다면,
약에 효과가 덜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포근함이 그대의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이제 그만 어른이 될 차례가 되었나 보다.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든든하고 강한 사람.
제일 먼저 우리 가족을 한 곳에 모아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