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연 Nov 21. 2024

마라톤

우리의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잠식된 우울은 좀처럼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다지, 울고 싶지도 웃고 싶지도 않은

오늘 같은 나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더러

왜 이리 애매한 것이냐며 버럭 화가 나기도 한다.


사실 화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멍하니.

그저 멍하니.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세상 잃은 표정을 하고

담배를 연달아 태운다.


꺼져가는 불씨를 보면서

내 우울이 이랬으면,

이렇게 타서 없어져버렸으면


우리 가족을 집어삼킬 어둠이

좀처럼 없어져버렸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우울의 종말은 언제가 될까?

종말을 기원하는 애석함과

그래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잡아보는

자그마한 희망을 보고,


오늘은,

아주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대신 울어주는 하늘 아내,

두 손 모아, 좀처럼 그치지 않는

우울의 종말을 기원하며.


우리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를 한다.

인생은 정해진 길을 각자 가는 것이 진짜 인생인가

그런 고민을 하며 의문을 품기도 하며,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며

정해진 목적지가 아닌 나만의 목적지로 가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겠고,

인생은 결코 마라톤이 아니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인생이 결코 마라톤이 아니라는 입장에 동의하는 바이다.


목표를 향해 걷다 보면 샛길이 나오기도 하며,

그보다 천천히 걸을 때쯤이면

내 주변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마라톤의 방향이 달라진다.


달콤한 악의 유혹이

나를 샛길로 이끌었을 때,

그 샛길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걷기 좋게, 더 가깝게

종점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에

샛길로 가게 되었을 때,


낭떠러지 앞에서

막연한 후회를 하게 됐을 때의

그 허망함과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며

나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나를 보며


끝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을 잊고 걸어온 샛길보다

가파른 비탈길을 걸으며 흘린 땀에 의미를 두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인생, 마라톤이 아니겠는가

一그런 생각을 했다.


나와 반대로

인생을 마라톤과 같다며 생각하는 당신에게

당장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쉬워 보이는 샛길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에 의미를 두자는 말.


그리고,


종점까지 단번에 가지 않고,

중간에 그늘 밑에 쉬어간다 한들

 다 괜찮다는 말.


종점에 빠르게 도달한 이에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우리는 결국 완주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며


중간에 다른 길로 빠졌더라도

다시, 처음부터 걸으면 된다는 말.


—그런 말을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홀로 걷다 잠식되지 않는 우울이

결국 수면 위에 떠올랐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나는 끝내 마지막까지 갈 수 있는가.

나는 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종점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가 선택한 행동에

의미는 쇠퇴되고,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은 온데간데없으며

샛길에 빠졌을 때보다 더 혼란스러운 내가


지금 생각해야 하는 사실은

—결국 사실,

마라톤의 목적은 없어도 된다는 말이다.


우리 삶의 목적이 아직

선명하게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우울의 종말을 기원하며

걷던 중 몇천 년, 만만 년의 세월을 머금은

커다란 나무 아래에

이를 그늘 삼아, 내 땀을 식히며 쉬어가도


내가 쉬는 중에 다른 이들이

내 앞을 거슬러 지나간다 하더라도,


전부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Commissioned by Studio-7(Seven)

Thank you for your request.

작가의 이전글 죄책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