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었다.
10개월 동안 기다리던 소중한 생명이
잘 먹고, 잘 챙긴 덕에 별 탈 없이 태어났다.
탯줄을 길게 달고서 태어난 아이가
꼭 "엄마"를 부르는듯한 울음소리로
열심히도 운다.
너만큼은 힘들지 않게 해 줄게.
너만큼은 상처받지 않게 해 줄 거야.
너만큼은 …
/
아직도 핏덩이 같은 내 새끼가
10개월을 기다려 만난 내 새끼가
10개월 넘게 죽음을 갈증 한다.
죽음에 대한 갈증은 어떤 마음일까,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과 등지려 하는 걸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매일을 산다는 것은,
마치 마주하기 싫은 지옥 속에서
아주 천천히 타들어가듯 지내는 것 같아서
사실 나는 그게 너무 힘든데,
너는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울었다.
또다시 병원에 들어간다는 자그마한 아이가
들뜬 목소리로 "엄마 준비 다 했어?" 하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응."이라 대답했고,
애석하게도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꼭 다음번에는 여행 갈 때
그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준비 다 했어?"라고.
주머니에서 손을 빼면
손이 금방 얼어버리는 계절이 찾아왔다.
또다시 마주하기 싫은 계절이었는데,
나는 이토록이나 멀쩡하게 살아있는 탓에
얼어붙은 손으로 엄마에게 인사한다.
"울지 마, 나 잘 다녀올게."
내가 나 자신을 더러 이상하다 느끼게 된 계기는
'원망' 하나 때문이었다.
지난 일임에도 불과,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내 가족을 원망하고,
내 친구를 원망하고,
내 주변에 모든 이들을 원망하길래
"나 아직 안 괜찮구나." 하고 생각했다.
원망은 내가 엮어놓은 수건과도 같아서
금방 목을 졸랐고,
도무지 숨통이 트이지 않아
살고 싶다는 갈증 때문에
나는 또다시 병원을 찾았다.
죽음에 대한 갈증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살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옥상에서 저 밑에 땅바닥을 보았는데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폴짝하고 뛰어서 저 밑을 내려가도
다치지 않고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뛰어내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곳이 옥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에
그 마음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치이고 치여서
잠시 도망치듯 온 병원에서
어쩜 당신들은 이토록이나 내게 따뜻할 수 있느냐
그렇게 물어보니,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여전히 인간을 저주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한참 동안을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서,
다른 이들은 다 잘 사는데,
엄마도 내게 미안하다 하면서도
옛날이야기를 또 하냐고 혼내는데
왜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않느냐며
되려 성내는 나였다.
당이 떨어진다.
손톱을 잘근 깨물었다.
여전히 당이 떨어진다.
이번엔 손가락을 깨물었다.
여전히 당은,
팔을 뜯었다.
여전히 당은,
…
작년에 썼던 일기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
나를 숨 막히게 조여 온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당신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당신과 관련된 내 지난 상처에 대해 말하면,
당신은…
꼭 내 잘못이라는 듯
왜 과거에 있냐며 뭐라고 한다.
그래서 슬펐다.
마음이. 그러니까, 심장이 없는
봉제인형이 되고 싶었다.
속은 솜으로 꽉 차있고
맥동 하나 느껴지지 않는 봉제인형.
여기저기 실바늘로 꿰맨 자국이 많은
그저 그런 봉제인형.
/
"아버지"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고 나는 다시,
"아버지" 하고 불렀다.
"응?" 아버지가 고개를 돌렸고, 나는
"사랑해!"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거짓말!"
나는 원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난 내 못난 마음으로
그들을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그래서 서럽고,
그래서 우울한 듯했다.
원망하지 말자.
지내기만 어려워진다.
용서하자.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니 용서하지 마.
그들은 아직도 몰라.
원망해. 실컷 해. 네 마음대로 해.
네가 편할 수 있게.
이렇게 매일 내 마음의 조각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싸운다.
아주 짙고 끈적한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눈부시게 나를 비춘다.
내가 운 것은,
눈이 시려서 눈을 감았더니
눈물이 절로 나왔을 뿐이다.
넌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어 있을 거냐고 혼났다.
그 기억들은 비수처럼 내게 꽂혀서는
나를 이토록이나 아프게 했는데
타인의 고통도, 지난 고통도
전부 다 똑같은 고통인데
대체 왜?
왜 왜 왜 왜… 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
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 왜 왜…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지안아 나는 왜 태어났을까?
세상이 날 원해서?
지금의 식구들이 날 원해서?
지안아, 나는 왜 태어났을까?
지안아,
지안아.
나 손이 너무 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