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니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이름 없는 바에 앉아–

by 호연

제철 수박 한 입 베어문 듯

비친 저 초승달에게도

의미라는 게 있을까?


이 세상에서, 이 땅에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에 의미가 있듯

나를 비추는 저 한겨울 초승달에도

의미라는 게 있을까?


누군가 말했다.

세상살이하다가 문득,


낮에 하늘을 바라보는 자는

삶을 잘 살고 있다는 뜻이고,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자는

오늘 하루를 잘 마쳤다는 뜻이랬다.


나는 아직 낮과 밤의 하늘이 어색하고,

그런 하늘과 마주보고 앉아

제대로 인사를 건넨 적도,

대화를 해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시간이 참 빠르게도 흘렀다.

흘러가는 줄도 몰랐던 시간 속

아주 작은 빈틈 사이사이에

내 상처가 고스란히 숨어있다.


숨어있다가, 나를 얼마나 놀라게 하려고.

나에게 또 얼마나 상처가 되려고.


초승달에게 아주 흔한 질문을 던졌다.

"무저항도 죄가 됩니까?"

그랬더니 하늘이 그러하다 대답했고,

나는 그런 하늘에게 말했다.


"지금 당신이 나를 벌하는 중이라면

피하고 도망치지 않을 테니,

나를 위해 작은 별사탕을 손에 쥐어주시오."


이 세상은 지옥이고,

나는 아주 작은 별사탕을 한 손에 쥐고

지옥을 떠도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

2025년 신년을 맞이했을 때

내게 바로 먼저 든 생각이 있냐 묻는다면,


난 아직도 2024년이 되었다는 의미로

엑스포광장에 커다란 불꽃들이

내 앞에서 춤을 춘 것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저물고,

내 나이도 시간을 머금었고

내 인생도 시간을 머금었구나.


사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직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놓아주지 못한 생명들이 존재하고,


내 웅크린 손을 활짝 펼쳐봤을 때

별사탕이 아직 녹지도, 부서지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내 손에 있다는 것,


나는 아직 지옥에 살면서

별사탕을 머금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무저항도, 결코 죄가 되느냐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바에 들어가

각자 읽을 책을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달콤한 칵테일을 골랐고,

반면에 나는 마티니를 드라이하게 한 잔.

그렇게 달라고 이야기했다.


쌉쌀한 마티니 한 잔에,

올리브를 한 입 씹었을 때

침샘에 침이 나오기 시작하고

코에서 위스키향이 감돌 때,


신년이라서 특별했던 게 아니라

그녀와 마티니 한 잔에 행복했다.


다음에도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이름 없는 바에 들어가서,

마티니를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주로 준비된 비스킷에

대파베이컨크림치즈,

녹색깔의 올리브.


그 자체로 행복했다.


오로지 인간만이

행복을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사랑스러운 바에 데려간 당신의 마음 덕에

행복했던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곳에서 마티니 한 잔과

낡아빠진 편지지와

잘 번지는 잉크를 머금은 펜.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순간이 행복했다.


그때,

편지를 쓰다 보니, 아차. 싶었다.

편지를 쓰기 위해서 주먹을 펼쳤을 때

별사탕이 보이지 않았다.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 소중한 별사탕은 온데간데없고,

내 손에는

값싼 편지지와 값싼 볼펜이 있었고,


—생각했다.

달콤한 별사탕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살게 하는구나.


/

살고 싶어졌다.

아주아주 열심히.


하늘이 내게 수천 개 만만 개의

별사탕을 쥐어준다 해도 나는.

나는,

정말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더러 행복이라 부르기로 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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