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으면 좋겠다.

by 호연

눈이 왔으면 좋겠다.


하얀 눈이 펑펑 내려서

길가에 바닥이 다 얼어붙고,


얼어붙은 김에, 이 미운 마음도 같이

꽁꽁 얼어버렸으면 좋겠다.


내 작은 소망에 비웃음 지어도

몇 번이라도 떠올려보면서

늘 한결같이 드는 생각은


내 미운 마음이 얼어붙든지

아니면 나 자체가 얼어버려서

잘 흘러가던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흘러가는 시간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 건

사실 꽤 됐다. 한 5년 쯔음 됐으려나.


당신은 앞으로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 건지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향해야 하는 건지

얼어붙어버린 시간에 다 맡겨두고서

편안하게 쉬고 싶다.


입김이 날 정도로 추운 날씨에

왜 마음도 같이 차가워져서는,


어느새 우리는 어른이 되고

누군가를 만나서 경험을 더하고,

빼고 싶은 기억은 전부 빼고서,


그렇게 내 마음대로

기억하고서

어느 순간에 미소를 짓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말하며

끝내 웃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어른이 되는 수밖에 없다면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죽으려고 마음먹었던 때에

그날의 날씨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날의 기분 또한 중요하지 않았고,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을

내려놓을 수도 없고,

힘들어하고 있는 가족을

내려놓을 수 없었고,


마음이 텅 비어버린 시점에

나를 내려놓는 것이 가장 쉬워서

나를 내려놓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그게 가장 빠르겠다 싶어서

그게 가장 편하겠다 싶어서


그래서 나를 내려놓고,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기에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고

서둘러 남은 돈 탈탈 털어서

급하게 택시를 탔고,


가장 가까운 바다로 향해달라 이야기하고서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해변에 가서

풍덩, 바다에 빠져버렸는데


"넌 대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렇게 바다가 물어보길래,

오늘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고 대답했고


바다는 끝내 내게 말했다.

"넌 오늘도 역시 틀렸고,

정답을 대답하지 못했구나."


그러고서 모래사장으로 나를 밀쳐냈고,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고

"다시 서둘러 집으로 가자."

—그래, 그렇게 하자.

..

.

눈 떠보니 난 병원에 있었고,

내 피부는 깊게 찢어져있었고,


내 소중한 것들이 한 곳에 모여서

나를 병원으로 보냈다.

마음을 치료하고 돌아오라며,

그때쯤 돌아오라며.


유난히도 멀리,

멀리 있는 것만 같았다.


바다가 말한 '정답'이라는 것 말이다.


부디 내 미래가

행복한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반겨줄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눈을 감고 기도했고

눈을 떠보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

눈이 왔으면 좋겠다.

하얀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길가에 바닥도, 못난 내 마음도

함께 얼어붙어버렸으면 좋겠다.


벌써 이렇게나 행복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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