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으면 좋겠다.
누군가, 이틀 전 걷고 있었을 때
눈이 펑펑 내렸으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댔다.
비록 나와 같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기억에 대해 말하기를,
내가 나인 것은 바로 내가 기억하기 때문이라는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조차 기억하는 것이
싫기도, 또 힘들기도 하지만
기억하기에 그러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도,
또 그러한 것을 반복하고 싶지도 않은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 또한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
一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차라리 없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역사가 없고
또 그러한 나라도 없고, 오히려
"그러한 과거가 있었기에"
"그것을 기억하기에"
아픔을 딛고 앞을 내다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이라.
一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지금의 눈은
과거를 잊지 않는 기억을 통해 주어진 것이니,
기억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반복할 수 있기에
그러지 말라는 등불과 같기도 혹은,
넘어지지 말라고 그어진 선이 아닐까.
그렇다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필요악인가 복인가.
눈이 왔으면 한다. 펑펑.
..
.
내 머릿속에 있던 모든 기억들이 얼어버렸다.
아직 날도 그렇게 추워지진 않았는데,
아직 길가에 얼음이 맺히지 않았는데,
내 머릿속에 있던 기억들만 얼어붙어서
기억을 꺼내려고 하면 미끄러져 넘어진다.
굳은 마음으로 일어났을 때,
내 곁에 누군가라도 존재하길 바랬다.
나도 결국 사람이었던 거지,
외로움이라는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이 너무나도 쓰라리다는 걸 아니까,
그 고통을 피해 다닌다는 게 결국
미끄러져버린 거다.
꽁꽁 얼어붙은 바닥에서.
/
매일같이 속죄하는 삶,
나날이 죄는 늘어만가고
이제는 주님의 보혈로
씻을 수도 없는 죄밖에 남지 않아서,
부끄러운 마음에 집 밖을 나가지 못한다.
또다시 미끄러져버릴까 봐.
또다시 속죄하는 날이 올까 봐.
쓰라린 고통은 재울 수 없이
늘 부지런히 나를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