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이정표라 대답할 것

by 호연

가장 크나큰 사랑을 나눴던 누군가와의 만남 속

꼭 나 자신이 무언가라도 된 것 같았다가,

시간이 흘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까지

시간은 내가 잡을 틈도 없이 흘렀고,

그렇게 당신과 멀어졌다.​


관계는 파도와 같다.

잔잔하고 넓은 바다에 큰 영향을 줄 만한 충격과도 같은 것이 순식간에 자극을 줘버려서는 바다의 오감과 모든 생명에게 그토록 큰 영향을 주니까.

파도가 모이면 잔잔한 바다가 된단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의 이별을 이렇게도 담대히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

파도 같았던 날들이 모여 바다가 된 탓이 아니었을까

ㅡ나는 생각했다.​


당시에는 쓰나미 같았던 폭풍과 비슷했던 파도가

시간이 흐르자, 그저 바람이 불었던 것이었다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게 시나브로 우리가 우리였던 사실

그 하나만을 떠올려도 행복할 수 있기를,


그 마음 품고 넓게도 사랑할 수 있기를.


방파제 위에 올라갔다.


바람으로 인한 간접적인 파도로

이 근방에서 죽은 사람만 몇십 명이 된다고 한다.


일렁이는 너울성 파도와 함께,

초연함을 벗어나

저 은하에 한 발짝 더 다가가려

바다에 더 가까이 걸어갔다.


저 너머에 보이는 것이,

새벽을 알리는 오징어배라고 하기엔

평소보다 어부들이 몇 배는 부지런해 보였고,


이 소리가,

그저 파도가 우는 소리라고 하기엔

꼭 인간의 목소리와 빼어 닮아있었다.

위험하니 손을 잡고

이리로 오라는 말과 함께 나를 구해주는데,

내가 밟고 있었던 방파제와 같이 단단한 바닥에 발을 얹자 경찰은 중심 잃고 배시시 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렇게나 웃는 게 예쁘면서."


당신과 함께 본 바다가

그저 푸르고 예쁘게 보였던 만큼,

당시에 나는 희망을 봤었는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줄기 희망 꺾어버리려

그 바다에 제 몸 던져버릴 뻔했어.


우리가 봤던 예쁜 바다는 더 아름다워질 뻔했지 뭐야.


나는,

불운과 행운이 공존하는 바다의 이중성을 사랑하고,


그걸 알면서도 눈 한번 꼭 감고 바다를 바라보며

동전 하나 아까워하지 않고 던지면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행운을 비는 이 순간을 사랑해.​


더 이상은 바다가 무섭지 않다며

어여쁜 웃음 지어줄래?


바다는 늘 눈이 퉁퉁 부어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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