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한가을이었다.
여름 힘들었다며 머리 다 빠진 나무들이
가엾게 무성한 시기에,
바닥엔 솔방울이 참 많았다.
밟으면 아스러질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뭉쳐있으면 인간이 밟았을 때
되려 그의 발이 눌리는 느낌이었던
단단하기도 참 딴딴했던 의리 좋은 솔방울들 사이에
번데기가 되려 기다리는 굼벵이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굼벵이는 몰랐을 거야 자신이 굼벵이인 줄.
바람에 움직이는 솔방울들이 마치,
살겠다고 발악하는 자신과 같다며
다 같은 존재인 줄 알았을 거야.
굼벵이 곁에는 솔방울밖에 없었다.
바람이 오른쪽으로 불 때면 다 함께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솔방울들 사이에서
왼쪽으로 몸을 틀 때면 소외감을 느꼈을 거야.
굼벵이는 그런 솔방울이 신기할 뿐이었다.
약한 몸을 가지고 제 힘으로
잘도 움직인다 생각했을 테니까.
굼벵이는 솔방울과 함께할 수 없었다.
솔방울들은 바람에 날려 제 몸 바람에 실어
저 멀리 데굴데굴 굴러갔으니.
굼벵이는 솔방울처럼 서툰 몸 이끌어 기어가던 중
거인에 밟혀 죽었다.
자신과 함께 지냈던 솔방울처럼 죽을 때
몸에서 파삭 소리가 나지 않자 깨달았다.
나는 그들과 다른 존재였구나.
죽어서야 알았다.
말해주는 이 없었으니 몰랐겠지.
누구 하나 굼벵이에게로 굴러오지 않았으니 몰랐겠지.
그 굼벵이는 몰랐을 거야
자신의 존재 상관없이 자신이 밟힐 수 있을 것을.
그저 솔방울인 줄 알고 무참히도 밟혔다. 굼벵이는.
몸에서 파삭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