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무기력함의 원인이 무엇인 것 같냐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쉽게 입을 떼기엔 이유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와 내담자를 지루하게 할 게 분명했다.
지금 당장 내 우울의 원인이 무엇인 것 같냐고 되물었다.
나는 이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내게 조심스럽게 알려주더니, 나는 아마 남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을 때 즉, 베풀지 못할 때 그토록 우울해하고 무기력함을 느끼는 듯 한댔다.
내가 정말 그러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내 세상에는 늘 내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든, 다른 시간(사건)이 내 세상 중심부에 존재하든ㅡ그랬던 것 같다.
베풀 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면 남는 게 뭐냐고. 나는 꼭 남는 게 있어야 베푸는 거냐 대답했다. 당장 내가 힘들지 않을 정도, 버티기에 어렵지 않을 정도로만 나누고 베풀면 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 버티면서까지 베푸느냐 물었을 때에는, “상대방보다 내가 힘든 편이 나아서. “라고 했다.
나는 내가 힘든 순간에 하는 생각을 알고, 그때의 마음을 안다. 그래서 위기가 닥쳐와도 그게 설령 급작스러워 준비도 채 안된 상태였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그냥 딱 그 정도만 힘들 걸 알아서.
남들은 어렵다 하는 순간도 내겐 덤덤해서ㅡ차라리 내가 힘든 편이 낫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다. 너에게 그런 건 가르쳐주지 않았다며 통곡하는 어머니가 유독 작게 보였다. 나는 그 와중에 안아주고 싶었다. 야윈 등짝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나는 아빠가 죽음을 희망할 때 그 죽음을 양보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였더니 내 머릿속에서 ’ 죽음‘은 사라지고 아빠에게만 남았다.
나는 죽음을 양보하고 아빠를 지켰다. 내 세상은 늘 그랬다. 내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난 내 세상이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내 세상 또한 나로 인해 움직였다.
그걸 ’ 베풂‘이라 대답했다.
그게 내 삶이라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