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씨 언니이야기 I

상처를 낯설어하지 않는 자들

by 호연

‘이곳’에서는 모두가 상처를 낯설어하지 않는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명제를 제시한 임 씨 삼촌의 말이 생각났다.

괜한 걱정에 부담스러울 말도, 시선에 따가울 일도 없다. 그들만의 암묵적인 약속으로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 약속에 감사했다가ㅡ지금은 함께 스며들었다. 누군가의 아픔에 놀라지 않기. 옆옆방에 사는 최선미 씨는 조현병환자다.


나는 처음에 최선미 씨의 병을 모르고 있었다.

겉으로는 티가 안 났고, 어느 정도 느껴지는 바로는 ‘우리’와 같이 마음 한 구석(어쩌면 이곳저곳)이 괜찮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최선미 씨와 손잡고 함께 복도를 걸었다. 말주변이 없던 최선미 씨가 입을 떼는 귀한 순간이었다.


”남동생“

내게 ‘남동생’이랬다. 최선미 씨에게 남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남동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남동생을 그녀가 본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남동생이, 고구마를 구웠어. “ 하고 최선미 씨가 말했다. 동생이 고구마를 구운 일이 뭐 대수라고-싶던 찰나, 최선미 씨 눈에 고인 눈물을 보고서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창피했어. 그래서, 그래서,” 최선미 씨가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그렇게 몇 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병원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고, 유일하게 어린아이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이를 이용해야겠단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우와! 고구마 정말 맛있잖아. 나 그거 되게 좋아해. 요즘에는 없어서 못 먹는데…“ 하고 말했다.

나는 잠시 철없는 아이처럼 행동했다. 이에 대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고구마’와 ‘남동생’에 대한 기억을 바꿔주고 싶었다.


최선미 씨는 남동생에게 늘 미안하다.

어쩌면 그녀의 혼잣말은 동생과의 대화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최선미 씨 손을 잡고 복도를 걷다가, 내 손을 뿌리치고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최선미 씨가 내 눈엔 겁에 질린 듯 보였다.

“야이썅놈의 새끼야!” 소리치는 최선미 씨를 와락 안아주었다.


나는 내 몸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다.

최선미 씨를 꼭 끌어안으며 머리와 가냘픈 등짝을 부드럽게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많이 무서웠지. 괜찮아, 괜찮아 나 여기 있어. 나밖에 없어. “


무서웠냐는 물음에 ’끄덕‘하고 대답하는 그녀다.

앙상한 몸을 지닌 그녀가 내 몸에 손을 얹어 함께 안았다.


최선미 씨는 울다웃다를 반복했다.

몇 번을 반복하다 최선미 씨의 발걸음은 급작스레 빨라져 나를 앞서 나갔다. 그리고 허공을 보고는 웃었다.


최선미 씨가 누굴 보고 웃든, 그 상대가 남동생이든 …. 나는 최선미 씨의 미소가 좋다. 최선미 씨에게 조금이라도 평안이 찾아왔으면 한다.


최선미 씨가 말했다.

“호연아!”ㅡ최선미 씨의 기억에 내가 저장됐다. 내가 최선미 씨가 지은 미소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그렇게 앞으로도 웃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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