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호연의 일생

상처를 낯설어하지 않는 자들

by 호연


처음에 피를 봤을 땐 충격적이었다.

나도, 식구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ー 그러고 나서 피를 봤을 땐 부족했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구나. 했다.

ー 그다음에는 팔에 난도질을 했다. 이 정도로도 죽지 않는구나. 계획을 세웠다.

ー 그다음에는 목을 그었다, 길게 한 바퀴. 이제는 죽겠지? 죽었으면 좋겠다.


결국 병원에서는 입원을 결정.

바다에 투신하겠다는 계획은 어그러진 채로.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냄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자각하기도, 다른 누군가는 상처를 무기 삼아 상대방에게 겁을 주기도, 또 다른 누군가는 감정의 표현을 상처로 나타내기도 한댔다.


나는 처음에 피를 봤을 때 무언가를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계획에도 없이 피부가 찢겨져 표피층을 봐버리고서 기절했지만... 그때 다짐했다.

다시는 내 몸에 상처를 내지 말아야지.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고, ‘자살’에 대해 본격적으로 실행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고, 손목을 그었다.


이제 찢어지는 건 익숙했다. ‘익숙하다 ‘라는 표현이 다소 어울리지는 않지만... 아,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이미 난 망가진 사람, 쓰레기‘라 스스로를 칭하고 작은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존감은 낮아져만 가고, 눈은 높아졌던 시기에 나는 나 자체를 포용할 사람이 필요했다. 내 지난 상처를 보고 공감까지 바라지 않았다. 잠깐의 이해면 충분했다.


내 기억 속에는 내 상처를 보고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 자들이 오순도순 모여있다. 서로 입 맞추고 수군거리며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나무란다.


상처를 보고 마냥 놀랐던 사람,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사람, 몸을 소중히 여기라며 무어라 했던 사람, 눈물을 보였던 사람, 피했던 사람, 손가락질했던 사람, 징그러워했던 사람... 다양했다.


내가 찢은 상처는 늘 ‘눈’을 닮아있었다.

쪽 찢어진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

“넌 왜 또, 날 보고 울고 있는 거니.”


의사가 그 눈물을 닦아주고, 수십 바늘, 수백 바늘을 꿰었더니 이젠 녹색 천 쪼가리가, 파란 실이 달린 갈고리 모양 바늘과, 하얀 천장이 익숙하다. 어쩌면 조금은 포근할지도 모르겠다.


수술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요해진다.

정적을 깨려는 누군가의 목소리도, 타박하며 경멸하는 듯 짓는 표정도 보지 않아도 된다. 끝없는 책망을 외면할 수 있는 일.


내 상처를 낯설어하지 않는 자들.


무언가 목표를 삼고,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부질없는 허송세월 말고,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같은 삶. 난 그런 걸 바랬다.

돈만 생각하며 사는 인생, 갚아야 하는 빚더미만 걱정하며 사는 가여운 인생 말고. ー 내가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지,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인생.


나는 미래를 그리고 싶었다.

그곳에 희망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저 ‘미래’라는 게 존재했으면 했다.

나는 나 자신을 더러 ‘짐덩어리’와 같다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돌린 시간 속 현재의 내가 있을 수 있다면 ー 나는 이미 늦었더라도 홍익산부인과에 가서 김수민 씨에게 안부를 전하고, 그로부터 10년 뒤에 로또 번호를 알려주며, 셋째 아이를 낳지 말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의 외모와 성격이 똑 닮은 친구 같은 딸은 곁에 둘 수 없겠지만, 김수민 씨의 부부는 사랑하는 첫째 딸에게 조금이나마 불행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고, 자식으로부터의 원망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김수민 씨 부부는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고, 아무런 고통도 자책도 느낄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의미를 잃는다.
목적만 남는다. 앙상하게.
(손원평 소설 『아몬드』 中)



나더러 피해망상이랬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찢길 듯 아팠다. 정곡을 찌른 듯했다. 내 망상은 언제부턴가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원인도, 시기도 알 수 없었다.


불안에서 비롯된 상상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

오해는 화근이 되어 큰 화재로 번진다.


나 자신을 짐덩어리라 생각한 지는 꽤 됐다.

그걸 의식하고 살지 않았던 만큼 잘못된 생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썩어 눌러붙었다.


“나는 짐덩어리입니다. 힘든 집안의 식량을 먹어치우는 식충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 상상을 멈출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곁에 사람 자체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무의식 중 내가 직접 밀쳐냈고,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도태됐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 자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타나는 증상도, 앓고 있는 병도 모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잘 알고 있는 편이랬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사람, 어렵고 까다로운 환자.


사람들은 나를 싫어했던 게 아니라, 어렵고 불편했던 게 아니었을까? 차라리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나를 달랠 수 있게.

앞으로도 계속계속 기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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