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낯설어하지 않는 자들
다시 들어왔다. 이 지옥 같은 폐쇄병동에.
나는 가족을 속였고, 나를 속였다. 내가 나한테 속았다. 괜찮다 하면 괜찮은 줄 착각하고, 괜찮지 않다 말하면 그날은 하루종일 지옥과도 같이 지낸다. 이틀 뒤에 첫 출근이었던 직장과의 약속을 파토내고, 등신같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서 이곳에 왔다.
그날, 나는 아빠와 단둘이 데이트하다 엄마를 만나 맛있는 식사도 함께 했다. 약속도 잘 지켰고,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날이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어째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끊이질 않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죽고 싶다. 당장이라도 내 몸을 저 바다에 던져 죽고 싶다는 말이다.
그때, 고등학생 시절 나와 친하게 지냈던 음악선생님의 걱정 섞인 충고가 떠올랐다.
-너 같은 애는 바다, 물 근처에서 살면 안 돼. 널 집어삼킬지 모른다고.
그때는 와닿지 않았다. 내가 바다에 살게 될 줄 몰랐으며, 바다가 날 삼켜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랬던 열아홉 살의 내가 불현듯 스쳐 지나갔고, 나는 강릉에서 신철민 씨가 자살시위했던 얼마 전이 생각났다.
난 그때, 내가 구했던 아빠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가여운 내가 생각나기도 했다. 분명 전화로 신 씨 삼촌이 목을 긋고, 약을 먹었댔다. 그래서 내가 생각났다기보다, 이 우울에는 끝이 없구나 ー생각했다. 신철민 씨는 나와 비슷했으니까.
만약, 신철민 씨가 그날 죽었더라면, 난 단명 아닌 연명을 했을지 모른다. 죽음을 체험했을 거다. 당신은 꼭 나와 비슷하니까. 삼촌은 이 세상에 남은 쾌락을 즐기다 금방 공허 해졌겠지.
사실, 그날 후로 생각이 많아졌다. 신철민 씨의 죽음. 그 뒤에 남겨진 우리. 내 몫. 전부 무겁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 씨 삼촌은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들을 참 많이도 한 듯했다. 아끼던 시계를 주고, 모자를 주고, 식사를 대접하고 온종일 들떠있었다. 내일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게. 그렇게 해도 괜찮을 수 있게.
나는 그를 단번에 이해했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런 적이 이미 있으니까. 그가 떠나도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하루를 더 살아야 한다. 그 허망한 죽음에 나를 끼워 넣었다.
죽어도 되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 의지, 그리고... 계획 없는 자살. 난 그런 생각을 했고, 멈출 수 없었다. 생각의 근원을 묻는다면 이랬고 저랬던 사건을 갖다 붙이겠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멈출 수도 있었다.
그 정도의 의지는 내게 존재했다.
열아홉 살의 내가 다시 등장한다. 내 앞에 아빠가 서 있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아빠가 말했다. 자해가 뭔지 보여줄게 씨발
아빠가 말했다. 난 너 때문에 진짜 매일 죽고 싶어. 저 꼭대기에 가서. 야, 내가 미쳤다고 너 하나 때문에 6층에서 뛰어내리겠냐? 다리병신밖에 더 되지?
그 선명한 기억을 곱게 접어서 깊은 곳에 묻어 놨었다. 내 의지만으로는 꺼낼 수 없게. 아주 깊은 곳에 묻어놓았었다.ㅡ부모는 자식과 철든다 하였다. 그런 줄 알았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빠는 스물둘이 된 내게, 나 때문에 죽고 싶다고 했다. 저 위에서 떨어지고 싶댔다. 하루에도 열두 번은 그런 생각을 한다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끊임없이 어두운 생각만 났다. 멈추고 싶어도 이제는 내 의지만으로 역부족이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 “그래, 내가 너 짐덩어리 맞댔지?”
2-3년 전 썼던 일기에도 난 나더러 ‘짐덩어리’라 부르고 있었다.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봉제인형이 된 지금의 내게 남은 거라곤 속에 꽉 찬 솜뭉치뿐이라. 힘없이 같이 떨어지자 하고 싶었다.
인형 껴안듯 나를 안아줘. 그리고, 오붓하게 같이 죽자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다시 병원에 와있었다. 절실하게 살아야겠다 느껴서. 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간호사들과 상담사, 환우들 전부 땅이 꺼져라 한숨 쉬었다.
나는 책망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 않다. 목이 터져라 통곡하고 싶지 않다.
내 망가진 마음을 알아챈 언니가 내게 말했다.
“널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아빠가 그렇게 이야기한 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하자”
수화기 너머 정적이 흐르고,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아빠, 나랑 같이 살자. 나랑 오붓하게 같이 살자
…
며칠 뒤, 최 씨 언니의 퇴원 소식을 듣게 됐다. 옆옆방에 사는 최선미 씨에게 찾아가 말없이 와락 껴안았다.
-이제 언니 보고 싶어서 어째? 여태 정말 고생 많았어. 이제 그 누구도 언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항상 기억해! 모두 뒤에서 언니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거!
최선미 씨가 대답했다. “응! 호연아.”
최선미 씨의 저장된 기억 속 난 삭제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괜찮을 거야. 앞으로도 그렇게 미소 지어줘.
나가서 만나. 그때, 웃으면서 보자
/최 씨 언니 이야기 마침(2023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