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호연
“아빠가 너희를 키울 때 접시라도 깨지면,
완벽하게 치울 때까지 방에서도 못 나오게 했구먼...
마음이 그렇다. 항상 조심해”
나는 우리를 키웠을 적의 과거를 떠올려 그리움에 사로잡혀 마음이 슬픈 걸까 아니면, 부모 마음이 불편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상황 자체에 공허함을 느낀 걸까.
선택적으로 독립시키려는 부모의 변덕이 싫었다.
독립을 권하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부모 없이 처음 맞이한 사회에서의 타인에게 집중하려 했을 땐, 내 부모는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며 서운함이라는 감정에서 분노를 파생시켜 나무랐다.
그래도 외로운 건 힘드니까 ー 그냥 살아가는 내게는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던 만큼 그냥, 그러려니. “알았다” 이야기했다.
/아직 독립을 원하지 않는구나 ー 하고서./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나를 마치 생판 모르는 남 대하듯 대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채찍질했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네 주제가 뭐라고”
ー 그렇게 방황을 시작하고, 나는 여러 개의 가지를 뻗어 정리하고 성장했다.
내 방법이 보다 극단적이었던 걸까? 어떤 날에는 내게 부모가 존재했고, 다른 어떤 날에는 고아였다.
자신의 삶이 버거워 자식을 품지 못했다.
윤리적으로 어긋난다는 쉬운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라, 어떤 욕심 때문에 자식을 온전한 자유가 아닌, 방치와 방임에 두고 외면했다.
”어쩔 수 없었어”하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어깨에 다친 손을 얹어 토닥일 수밖에 없었고, 그 끝에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따듯했다.
누구 자식인지,
네 마음은 참 넓고 어른스러워.
고마워
따듯했나?
그랬었다고 믿는 편이 좋겠다.
나는 어떤 과거를 갖고 자랐으며,
그렇게 현재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해 꼭 필요한 객관적인 시선도, 반드시 없애야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내겐 너무 뒤숭숭하리 만큼 변덕스럽게 존재한다.
사이좋게 고루 나누어야 하는 것을 나누지 못하고 객관적인 시선은 지나치게 부족하고, 부정적인 생각은 과도하게 많다.
동심을 지켜주었던 과거의 부모를 원망해 봤자,
나도 언젠간 그 부질없는 행동을 똑같이 이행하고 있을 테니 원망보단 이해가 빠르겠고, 방황하는 내 모습에 외면했던 그들에겐 내 마음 아픈 것보다 그들의 힘듦을 우선 헤아리는 편이 갈등이 생기지 않겠다.
내가 어른이 된 후에 그들은,
내가 해왔던 모든 행동들이 희생이라 일러주었다.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서, 결핍을 메꾸어버릴 만큼 파급력이 있는 말 하나하나를 담아서
그렇게 살아야지.
ー이 생각들 전부 미루어두고서 난 어떤 환경이라 이런 사람이 되었고, 이런 사람들과 어린 시간을 나서 어린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지 말아야지
또 그런 다짐을 하면서,
허공에서 엄마의 격려를 얻는다.
한층 더 커서 이젠 정말 어른이 되었네,
우리 딸.
그 한마디와 함께 조용히 곁을 토닥이는 걸 보니
이제 그만 잘 시간이 됐나 보다.
다시 공장에 들어가, 병을 옮길 시간.
들리는 환청에 엄마의 목소리가, 아빠의 울음소리가 모두 섞여있었다. 반갑기도 무섭기도 하다가
ー이 감정이 그리움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