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상상-호연
2022. 5. 26.
딸에게.
딸, 버스 타고 집에 잘 도착했니?
아빠가 출근을 일찍 해야 하니까 배웅을 해주지 못했어. 마지막으로 손이라도 한번 더 잡고, 얼굴이라도 한번 어루만져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고 또 미안하네.
처음에는 우리 서윤이 독립했을 때 어색해서 그런지, 식탁에 우리 서윤이 숟가락 젓가락도 놓고, 닫혀있는 방문 앞에서 머뭇거리기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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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우리 서윤이는 지금 집에 없지 ー 싶더라. 아직 적응이 덜 돼서 그런 거겠지. 지금은 좀 나아.
아참,
우린 맨날 같은 것만 먹고살아!
속초에 와서 어땠어?
이전보다 마음이 불편하지만 않았다면 그걸로 됐어. 마음이 편했기를 바라는 게 당연히 부모 마음이지만, 우리 서윤이한테는 완전히 편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아빠는 다 이해해. 항상 널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아빠가 매일같이 돈 아끼라고 잔소리하고, 계획 세워서 생활하라고 하는 말들 기억나?
듣기 싫어도 꼭 한 번 더 새기고 되뇌어봤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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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분명 또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고, 서윤이가 살다 보면 아빠의 잔소리가 그저 지겨운 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날이 올 테니까.
집에 가는 길에, 눈 붙이고 자는 것도 좋지만 ー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옛날에 같이 갔던 대포항도 훑어보고, 아빠가 데려갔던 낙산 근처도 둘러보고, 양양 가까이에 왔을 때 쯔음에는 먹을 거 하나 없다면서 바쁘게 둘러봤던 식당가도 천천히 살펴보고... 넓은 마음에 좋은 것들만 담아갔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서윤아.
아빠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아빠는 먹지도 않는 빵 부스러기가 바닥에 있는 걸 봤을 때는 괜히 눈물도 나고, 우리 서윤이가 많이 보고 싶더라고.
아빠 일 갔을 때 서윤이 또 밥 말고 빵 먹었구나 하기도 하고... 괜히 미안한 마음에 울컥울컥 했어.
다음에 오면
더 여유롭게 대화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자.
사랑해 푹 쉬어. 사랑하는 아빠가.
그때 아빠가 해주고 싶었던 말을 상상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이런저런 말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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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아빠는 늘 나를 기다린다.
하고 싶은 말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작성하고, 수백 번 수천 번을 찢고 구기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아빠는 완성됐다. 아빠는 과묵한 사람, 말주변 없는 사람.
나는 하루 더 어른이 되어서, 아빠에 대한 기억을 수정했다. ー 아빠는 신중한 사람, 나를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대하는 사람.
결국 나를 기다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