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서윤의 일생

“나도 사람이야, 나도 힘들어.“

by 호연

 왜 인간은 남에게서 깎아 만든 부스럼을 긁어모아 자신을 채우려고 할까.


 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서 생긴 결핍을, 내가 만든 작품이라 생각하는 것에 채우려고 할까.


 어째서 인간은 자신의 삶에 갇혀 바깥을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더 넓은 세상이 있는데. 나와는 좀 다를 수 있는데. 왜 좁은 세상에서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고 도움을 빙자한 부담만을 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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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못된 줄 알았더라면, 그토록 노력하고 애쓰지 않았을 텐데.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며 동심을 지켜주던 어른들은 이제 노파가 되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나는 그들의 뜻에 맞추려 노력했고, 삶의 방향을 정했다. 일종의 책임전가이기도 했다.


 내가 결코 실수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넘어졌을 때, 위태롭고 어려운 비탈길을 알려준 사람이 저 사람이라며 책임을 물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서로에게도 좋을 거라는 생각에, 그 뜻에 응했다.


 나는 쉬운 길을 찾게 되기 마련이었다. 나는 나를 가엾게 생각하고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동정과 연민의 눈길이 이제는 익숙했으니까.


어디로 가도 지옥.
여기 있어도 지옥, 나가도 지옥.
어느 쪽도 지옥이라면, 혼자 보다는 나아.
그걸로 됐어.
나는 더 할 수 없이 행복했습니다.

 혐오스러운 ‘나’의 일생은 ‘마츠코’와 다를 바 없었던 듯했다. 늘 표정이 어두웠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보여준 미소에 누구보다 기뻐했던 소녀.


 어릴 적, 무사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포옹으로 반겼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ー때는 내가 8살,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티브이로 야구를 시청하다 홈런에 환호하며 나를 와락 끌어안은 아버지. 야구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나는 그날 이후, ‘홈런’은 기분 좋고 행복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화면이 뚫릴 듯 정면만을 응시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나를 봐주었으면 하는 단순한 마음에, 혼잣말을 흥얼거리고 별 것 아닌 일들을 일일이 보고하고 일러바쳤다.


 그때는 그것만이 더할 나위 없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거지? 왜 여기까지 온 거지?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더 이상 애쓰고 싶지도 않아. 구애하며 눈치를 살피고 싶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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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기 싫은 건 이리도 많으면서, 어째서 하고 싶은 건 하나도 없냐며 ー 나는 나더러 죽으라 했습니다.


 수십 번, 수천 번을 죽으라 이야기해 보았지만, 주마등까지 마주쳐놓고 아직 내 몸은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래, 우리도 사람이지. 나도, 당신들도.

 우리 애쓰지 맙시다.

 내려놓고, 포기해도 돼요.

 이제 그만, 그만 노력합시다.

 이미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니깐요-



 꼭 누가 잘못 가르친 아이처럼, 자꾸만 길을 잃고 방황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혼자 보다는 나으니까요.

 꼭 무언가에 꽂혀서 홀린 듯 행동해서 미안합니다. 늘 걱정만 시키는 것 같아서요.


 제 감정에는 기복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조울증 환자 같아 보이진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ー원인이 한 가지로 너무 확실하다는 거예요.


 저는 당신의 미소를 보고 싶어요.

 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호연、 서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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