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몰라요

원래 관심 없었잖아요 우리한테

by 호연

힘들어? 앞으론 더 힘들어


 무언가 한풀이를 하듯 독기 품은 글을 종이 한 장에 빈 공간 없이 빼곡하게 채워보아도 기억과 상처는 짙어져만 가고 처음 다짐했던 독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돼버린 후에야 깨닫는다.

 그냥, 처음부터 가만히 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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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명확히 흑과 백으로 나뉘어져 있다. 간혹 중간에 회색빛을 띠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확실하게 구분된다.


 내가 말한 흑과 백이라는 색은 사람이 말을 내뱉을 때 비로소 보이곤 하는데, 난 최근 몇 년간 내 세상에서 빛을 본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순백의 몇 마디를 내뱉고 싶어 하는데,

 이미 지나버린 어린 시절이 암흑으로 가득해 내 의지와는 달리 새하얀 무언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입밖에 나온 하얀 말 몇 마디는 금방 검게 물들고.


 왜 좋았던 기억은 머리를 쥐어짜 내야 떠오르면서

 안 좋았던 순간들은 툭하면 스쳐 지나가느냐고.

 원망하듯 소리치고 탄식해 보아도 내 이야기 듣는 이 한 명 없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이더라도

 기억이 다르고, 감정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을.

 인간은 참 간사하고 안일하게도 늘 자기 자신을 중심 삼아 타인의 상처를 헤아리려 들지 않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내가 듣고 보고 배운 대로.
내가 받았던 상처 그대로 다시 받게 될 거야.
그걸 이 세상에선 ‘업보’라 하는 거고.


 이젠 누굴 죽도록 책망하고 싶지도, 사랑을 구애하고 싶지도 않다. 아마,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그저 흐름에 맡겨 살고 싶다.


 그러다 불가피하게 사고가 나버리면,

 빠져나올 수도 없이 깊은 암흑에 빠져버리면,

 “어쩔 수 없지”하고 넘겨버릴 만큼

 난 지금, 아무런 의지도 없다고.


 내가 자책했던 시간만큼 당신들이 자책하길 바란다고. 내가 자살하면 당신들이 죽인 거라고 타살이라 불리우길 바란다고. 이 모든 바램들이 너무 미련하고 처량하지만 그래도, 난 그러길 바란다고.


 언젠 관심이라도 가졌냐며,

 익숙하지 않은 관심에 머리가 아파.

 차라리, 평소처럼 돈돈 거리면서 사람 피 말리게 해.

 학업, 능력 따져가면서 세상에 차별을 운운하란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평소’와 당신들이 생각하는 ‘평소’가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면, 이해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ー 나는 잠시 하얀빛을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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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 삶과 다를 거라는 희망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결핍을 채우려 아득바득 애썼잖아.


 언제는 희망찬 생각만 하다가 왜 또 이렇게 삐딱선이야 ー 싶다면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윤이는 병자구나.

 윤이는 병자였지.

 맞다, 많이 아픈 아이였지.

 이 아이를 어쩌면 좋지.

 병원에 평생토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데.

 바깥으로 나가서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

.

하지 말라고. 그런 말 하지 마

그냥 날 좀 내버려 둬 제발

숨 막혀, 몇 년 동안 숨 돌리기 힘들었어.

편하게 숨 쉬어 본 적이 없단 말이야.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다시 똑바로 설명해 주지.

 난 망가졌다고.

 

 병원에 가고 싶었고, 몇 차례 도움을 청했어.

 내 몸이 이상해. 나 좀 이상한 것 같아.


 그때마다 당신들이 했던 대답

ー모두가 그러고 살아.

 ”나 귀가 먹먹해져서 잘 안 들려. 계속 소름돋고..”

ー신경이 예민해지면 그래. 나도 그래.

ー나도 죽고 싶어. 너만 죽고 싶은 줄 알아?

ー나도 사람이야.

ー그래도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어른이 때린다고 너도 같이 때려?

ー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ー내가 자해가 뭔지 제대로 알려줄게.

ー너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은 죽을 생각해.


 의사는 내게 말했다.

 내 미래, 취업 걱정에 막연한 생각으로 병원에 보내지 않고 제때 치료받지 않아 그때 정서가 그대로 굳어서 아주 오래 남게 되었다고.


 차라리 그때 썩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여전히 아리고 고통스럽다고.


 난 어디로 가야 돼?

 그냥 방황하면서 망령처럼 떠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흘러서 이 고통도 끝나겠지.

 시간이 약으로 작용하길 바랬는데,

 나한텐 늘 독 같았어. 천천히 날 망가뜨렸어.


 그러니, 그냥 놓아버려 진심이야

 같이 망가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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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이것도 내 진심이야.


 같이 방황했던 시절에 효은아, 난 널 정말 사랑했어.

 여느 때처럼 무기력하게 병원에서 눈을 뜨고, 복도를 어슬렁거리다 너한테서 온 전화를 받았는데,


 그렇게 걱정스럽게 아침부터 펑펑 울다가,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해 버리면 어떡해.


 윤아,

 웃음이 선해.

 거울을 봐.


 아무런 악의도 없고 그냥 엄청 순수하고, 네가 한번 웃은 모습을 보면 너만 보고 싶어.

 그래서 널 더 웃겨주고 싶고, 계속 너만 보고 싶어.


 웃을 때 개나리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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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은아, 효은아 우리 아주 오랫동안 살자.

열심히 살자.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행복하자.

무작정 행복이 뭐냐 묻지 말고,


어른들은 몰라. 그런 거에 관심 없어.

나나 너나 행복하자, 그래.


사랑해. 나도 너 보고 싶어.

너를 웃게 해주고 싶어.


나 외로워. 같이 외롭자

나 지쳐. 같이 지치자.

나 우울해. 같이 우울할래?


너 죽고 싶다며. 그치만 난 널 살리고 싶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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