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낯설어하지 않는 자들
내가 과연 이곳을 그리워하게 되는 날이 올까? 생각했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얼굴들에 정이 들고, 복도에 익숙했던 얼굴이 어느 날 보이지 않을 때면, 퇴원한 걸까 문득 궁금해지는 일이
ー 내가 이곳에 끝내 적응했다 알려주었다.
이전에 한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만일 정신과 의사였더라면, 주기적으로 꼬박꼬박 방문하던 환자가 제때 내원하지 않았을 때 두려움에 휩쓸리지는 않을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뭐였더라.
문진 할 때 내뱉었던 말 몇 마디를 돌이키고 싶진 않을까. 그러다 늦게라도 방문해 준다면 그땐 정말 반갑지 않을까.
죽음을 갈망하다 떠난 자라는 생각에 책임을 느끼고 마음을 아파하진 않을까 아니면, 당장은 회피해 버릴까 ー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후자를 택하겠지. 남은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병원을 방문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병원에 꼬박꼬박 가다 멈추었던 때의 계기를.
처음엔 아버지의 만류. 그다음엔 금전을 원인으로. 그다음엔… 자살기도.
생각이 많아질수록 걱정은 많아지고, 책임만 깊어진다.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나무랄 수도 없이 비참해진다. 그러다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와 자책을 하게 되고, 그 끝에는 우울이 기다리고 있다.
어서 와.
오늘은 좀 늦었네.
딸이 보고 싶다고, 나를 딸이라 부르며 간식을 챙겨주던 아저씨.
동생이 창피했다며 눈물을 흘리다 허공에 주먹질을 했던 아가씨.
아무도 없는 복도 한가운데에 앉아서, 아무것도 없는 정면을 응시하며 이따 이야기를 나누자며 무언가에 약속을 건네는 할머니.
내가 복도를 지나갈 때 마주치면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손을 건네는 할아버지.
본인 스스로 조울증인 줄 몰랐다가도 주변의 손가락질로 지병을 자각해 자신의 기분이 오락가락한다며 이해를 구하고 양해를 바라는 아저씨.
자식 세 명 중 두 명이 자살했다며 웃으며 이야기하고서 수면제를 삼키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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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들이 보고나 싶을까요.
그립기는 할까요.
내 상처를 낯설어하지 않는 자들은 반갑기 마련이었다. 사실 처음엔 무섭기도, 두렵기도 했지만… 내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주는 그들에게 감사했다.
딱히 ‘감사’를 느낄 일은 아닌데,
이 세상에 살다 보면 가끔 고맙단 생각도 드는걸.
놀라지 않고, 내색하지 않는,
어쩌면 내색할 것도 없이 덤덤할지도 모르는 되려
그들의 아픈 과거를 헤아리게 되는 이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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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죠?
그래도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미안했고, 고마웠어요.
죽고 싶다 이야기하면 무작정 말리기보다, 자신도 죽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며 자살 경험을 내려놓아주었던 당신에게 감사했습니다.
내게 화를 버럭 냈다가 금방 사그라져서는,
같은 환자라서 그런 거니 이해해 달라 먼저 말 건네주어 고마웠어요.
*
나에게 귀인처럼 나타나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 손 잡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당신은 귀인 같은 존재니까요.
나에게, 이런저런 희망을 심어주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했고 아마,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나는 약속을 한 가지 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삶은 이곳에 남겨두고,
추억 아닌 경험이었다 생각하면서,
잠시 꿈을 꾸었다 생각하기로.
나간 순간 전부 잊어버리기로요.
포근했던 품을 잊지 않을 겁니다.
이 서약을 맺은 당신은 여전히 생과 사를 고민 중이겠지만, 끝내 살아가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목을 긋고, 매고,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세상에 등지려 했지만 결국 난 살아있습니다.
당신도 결국 살기를 바랍니다.
아저씨도, 아가씨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당신도 모두 잠시 꿈을 꾸었다 생각하고 딛고 일어나길 바랍니다.
우릴 향해 별들이 빛나고 있는데,
꼭,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요.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서
이렇게 바래봅니다.
…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ー10월、 오세영(1942-)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