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몇 번을 죽여야 만족할까요?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선잠을 자고 일어나, 반쯤 뜬 눈으로 주치의를 만났다.
ー이번주에는 좀 어떻게 지냈나요?
사실,
난 이 물음을 들을 때마다 대답하기 늘 막막하다.
“그냥, 평소같이 지냈습니다.”라 대답하기에는
내가 평소에 어떤지 모를 것 같고,
잘 지냈다 이야기하기에는,
그냥 돌아서버릴 것 같아서.
그렇다고
잘 못 지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 버리면,
병실 안에 있는 모두에게 이목집중 될 것 같아서.
그저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럭저럭 잘 지냈습니다.”라 대답하는 일.
|
그래도, 오늘은 용기를 내어 솔직한 내 진심을 전했다.
“사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요.”
이미 예상했던 반응대로,
평상시 태연한 듯 보였던 환자가
사람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 묻는다면,
나는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눈치를 보는 사람이다.
독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부정적인 상상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져만 가고,
내가 상상한 독자들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다.
뭔 생각이 이리 많냐며 글을 읽다 말아버릴 것 같고,
마치 중증처럼 보이는 마음의 병이 너무나도 거북해
외면해 버릴 것 같다.
인간은 자신만이 읽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한댔다.
내가 그랬던 듯했다.
난 그런 사람이다.
어째서인지 나를 꾸며내고,
꾸며낸 내 모습에 나 마저 착각하여
인생을 하나의 연극처럼 삼아 사람들을 속이고,
나 자신마저 속아버리는 일.
그런 일이 익숙한 사람.
|
의사가 내게 말했다.
“그래도 환자들과 잘 지내는 듯 보였는데요.
대화도 잘하고, 관계를 잘 꾸리는 것 같아 보였는데.”
나는 곧장 대답했다.
“사실 저는 그때마다 애쓰고 있었어요.
잠깐 퇴원해서 밖에 있었을 때에는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도무지 눈을 쳐다보지 못하겠고,
말 한마디 거는 것조차 어려웠어요.
그때마다 식은땀이 났고…
그래도, 병원에서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에요.
모두가 제 상처를 낯설게 바라보지 않으니까.
날 오래전부터 알았다는 듯 쉽게 쉽게 대하니까.
하지만 저는 밖에 나갔을 때가 두려워요.
무서워요, 선생님.
그저 공황장애 후유증이라 생각했던 이 증상들이
‘대인기피증’인 줄 몰랐어요.“
이런 유일한 고백을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예고도 없이,
어릴 적 마주했던 아빠의 형상이 나타난다.
어둠에서 서서히 아빠의 선은 짙어지고,
아빠는 인상을 쓰며 내게 화를 낸다.
내가 말하는 내 ’증상‘들 전부에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너가 이랬다고?
너가 그랬다고?
너가 그렇게 생각을 했다고?“
하면서.
나는 그게 맞다 대답하고 싶어도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의해 끄덕이지도 못하고서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혼나고 있는다.
사랑의 힘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주변 이를 만나는 일이 생길 때면 잠재돼 있던 힘을 발휘해,
애써 식은땀을 닦아내며 그 사람들을 마주한다.
만남을 가진 이후 맞닥뜨릴 후폭풍은 굉장하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가 아주 잠시 힘들면 그만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몇 년을 버텨왔다.
예를 들어 내게 애인이 있다면,
애인의 가족 혹은 친구들을 만나는 데에
너무나 많은 연료가 필요하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힘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발휘한다.
남들이 말하는 ‘평소‘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반긴다.
늘 마음은 무겁고 어두웠지만.
나는 언제부터인지,
내가 언제든 상대방에게
반박하고 변명할 준비를
하고 있는 버릇을 갖고 있다.
타인에게 늘 항상 방어태세를 가진다는 일이
스스로를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 일인지 알면서도
나는 이 행위를 멈출 수 없다.
어째서인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런 압박감 속에 살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인간에게 지쳤나 보다.
혼자 저 구석에 가, 이미 눈물 다 닦고
지친 내색하지 않고 있으니
사람들은 흘렸던 내 눈물 자국 알아보지 못하고,
오늘은 왜 기분이 좋지 않냐며
나에게 ‘기복’을 이야기하고
나에 대해 제 멋대로라며 평가한다.
나도 이 복잡하고 귀찮은 공식을 깨버리고 싶다.
더 이상 무언가에 위축돼 있기 싫고,
눈치를 보고 싶지도 않고,
나를 번지르르하게 꾸며내고 싶지도 않다.
과거의 아빠 형상을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고,
현재의 아빠와 덤덤하게 대화하고 싶단 말이다.
|
내가 나를 써 내려가면서도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갈기갈기 찢겨있던 마음에
또다시 난도질하는 것만 같다.
사람에게 치이고 치여서
지쳐있는 나를 보고서 누군가
ー동정과 연민에 중독되어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생각하더라도,
그저 피해망상 환자인 것 같다 하더라도,
다 괜찮다.
내 말에는 힘이 없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괜찮다.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비록 자기 합리화처럼 보일지 몰라도,
또다시 문득 과거의 아빠가 나타나서
“그건 대인기피증이 아니야.
대인기피증이 뭔지 알아?
너는 네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 뿐이야.
그것부터 고쳐. 너가 잘하는 게 대체 뭐야?
뭔 생각이 그렇게 많아?“
라고 나무라도,
그래도 괜찮다.
난 남은 시간동안
나머지를 모두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껍데기만 내놓고 사는 연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