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생일날 겨우살이가 피었기 때문이야.

by 호연

 한 남성의 고백을 듣게 됐다.

 올해 삼 월까지만 해도 죽으려 했다는 이야기.


 당장 내일이 퇴원이라는데, 사실은 막막하다고.

 술만 마시면 절제력이 사라져서 죽음을 그리는데, 알코올이라는 건 결국 우울을 낳고 그 우울은 충동적이게도 죽음을 부른다 하였다.


 내 침묵은 순간에 대한 경청을 의미했다.

 죽음에 관하여 생각해 본 자들의 정적이 흐르고, 모두 암묵적인 약속으로 건장한 남성의 등을 어루만졌다. 키가 멀대만 한 남자가 그토록 작아 보일 수 없었다.


 마음 같았으면 꼭 끌어안아줬을 거다.

 이렇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부질없는 소리와 함께.


 언제나 하는 생각이지만,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결코 이 세상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실재로서 사지 멀쩡한 채로 인생을 방황해도 그것을 죽음이라 부른다.


 어디로 가야 하냐며 보이지 않는 신에게 이정표를 달라 애처롭게 비는 것. 나는 이를 죽음이라 본다.


 이 세상에 인간은

 살아가면서,

 한 번쯤 죽고 또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무게를 얼마나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느냐,

 그 아픔에 얼마나 더 덤덤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저마다 아픔의 무게가 증명되겠다.


 누구에게 증명받으려 사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인정받는 것에 의의를 두고 살아가는 게 결국 우리니까.


 의미를 잃고 가치를 상실했을 때 우울감을 느끼고 허망한 마음에 죽음을 떠올리는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듣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잊어버린 내 죽음의 계기를 찾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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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고 났을 때면, 그때는 사람의 따뜻함을 알았길 바래.

 이 세상에 조금은 기대해 볼 수 있게.


 남성은 첫 번째 죽음에 목을 맸다 고백했다.

 약 열아홉 시간 만에 깨어났고, 일 분의 시간만 더 잠들어있었더라면 편안하게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쉽기도 하다며 웃었다.


 두 번째 죽음에 번개탄을 태웠다 고백했다.

 번개탄을 두 개 정도 피워봤지만, 결코 죽진 않았다고. 그래서 대답했다.

ー하늘이 아직 부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처음에 널 봤을 때, 너무 명랑하고 밝아서 왜 들어왔는지 몰랐어. 상처를 보고 곧장 눈치챘지만... 알코올의존증은 없니? 그건 없었으면 좋겠구나.”


 나는 대답했다.

 “늘 듣던 얘기지만, 언제나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에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는 말 있잖아요.

 제 상처를 보고 마음의 상처까지 보인다는 게 저한테는 너무나 아픈 이야기지만, 그걸 술로 풀어내진 않으려고요. 그러니 아저씨도 약속해요. 열심히 살아요.”


 남성은 웃으며 커피를 들이켰다.

 하늘의 부름 없이는 갈 수 없다는 말을 믿는 나로서는, 아직 우리는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 세상을 등질 준비조차 되지 않은 자를 하늘이 부를 리 없다.


 내가 꼭 이 세상이 버린 존재같이 느껴지다가도,

 죽음 앞에서 나를 그토록 야박하게 대할 때면

ー날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하루하고 또 하루를 무사히 나고 나면

 어느 순간에 나는 그만큼 어른이 되어서,

 내 죽음을 고백함으로써 누군가를 구원하기도 하겠지. 그게 비로소 구원이 되길 바라고.


 그 남성이 마지막에 했던 한 마디를 기억한다.

 “근데, 그게 마음처럼 안되더라.”


 나는 대답했다.

 죽음을 마음에 맡기지 않으면 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늘의 부르심은 야박하다.

 사실은 하늘이 아니라, 이 땅이 지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악한 자들을 데려가지 않고, 죽음에 관대하지 않다.


 이런저런 생각 모두를 내려놓고,

 그냥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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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날의 나에게 미안하다며, 침대 위에 무릎 꿇고서 하늘과 약속한다.


 내일 보자.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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