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이 세상에 광대로 살다 결국 은퇴를 결정

by 호연

인간의 눈이 무섭습니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과

그 눈동자에 비치는 주눅 든 내 모습이 너무 싫어요.


인간의 입이 무섭습니다.

나에게 말을 걸고 입술의 긴장을 푸는 그 모습이,

어떤 말이든 듣고 대답할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이

상상만 해도 피곤하고 힘들어요.


난 내 눈과 귀, 입과 코 전부 다 도려내서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어요.

귀는 가장 마지막에,

파도에 떠밀려 사라지는 소리를 다 듣고나야지

내가 안심할 테니까.


죽을 용기는 없습니다.

그 이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상상만으로도 슬픈 것들은

실제로도 슬플 테니까.


살면서 내 식구들 눈물을 직접 닦아준 적이 없어서

머릿속에 감히 상상을 하려 해 봐도

잘 그려지지가 않아요.


이렇게 흉흉한 세상에

차라리 누군가 뜬금없이 내게 난도질이라도 한다면,

미친 듯이 달리는 차에 어쩌다 치여 의식을 잃는다면,

그땐 내가 아니라 남 탓을 할 수 있으니까

그건 자살이라 할 수 없으니까


가끔 미친 것 같은 사람한테 겁도 없이 다가가곤 해요.

결국 별 일 없이 시시하게 대화가 끝나거나,

상황이라 할 것도 없이 상상했던 것과 달리 허무해서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열심히 살기 위해서

꿈을 만들어보라고,

사람을 만나보라고 제안하는 당신들에게

|

나는 그때마다 실은 기분이 나쁘기도 했어요.


내가,

그런 시도 한번 안 해봤을까요?


시간이 지나면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될까,

목표라는 게 생기고 꿈이라는 게 생길까,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데

ー시간이 독과 같은 사람에게 독촉하지 말으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누군가를 만나서

표정관리하던가, 흔한 아첨이라던가

더 이상 그런 걸 하고 싶진 않습니다.


내 웃는 모습이 예쁘다며

웃는 얼굴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웃고 싶지도 않고 말이에요.


그게 보기 좋다는 이유로

내가 굳이 애쓸 필요는 없으니까.


연료가 바닥났다는데 강요하는 사람들이

너무하고, 잔인한 거 아닌가?

|

이런 생각들을 갖고 산다고 솔직히 이야기하기엔

내가 뭐 그리 지칠 만큼 열심히 살았느냐고

나무랄까 봐 괜히 무서워서


이 세상에 도태된 찌질이같이

글로 끄적이고

매일 잘 삼켜댔던 알약 수십 개처럼

감히 셀 수 없을 만큼의 생각을

오늘도 삼켜내고 취한 채 잠들어볼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이번 달이 지나가고,

올해가 끝나있겠죠?


지난해 이맘때쯤 어떤 힘듦이 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이 나진 않으니까.

흐릿해질 때까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잠시 세상에 양해를 구하고

오늘도 숨어볼까 해요.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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