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전가

: 희망사항-호연

by 호연

누구나 힘든 순간은 있고,

결코 그것을 이겨냈다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에

언젠가는 도달한다.


그 순서를 보고, 듣고, 몸소 배우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대를 가지지 않게 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누군가 내게 인생에 대해 물었을 때,

눈빛에서 희망이 없다는 걸 느낀 이는 다수였고,

겉늙은이들 속에 속 안까지 새하얗게 변해버린

나를 발견했을 때 모두

ー 나를 가엾다는 듯, 안쓰럽다는 듯 동정했다.


내가 이 부정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뜨려놓는 이유는,


주마등을 보고 곧바로 마주친 거울 속,

해탈함에 웃고 있던 그때의 모습을

방금 전 급작스럽게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야.


웃으며 고난을 맞이하고,

웃으며 버림을 받아들이고,

웃으며 과거를 회상하며,


무릎 꿇고서도 해맑게 웃는 내 모습이

지나치게 처량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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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던 기억을 묻지 않고

꺼내놓고 본다는 것 자체가

그저,

자기학대만은 아니니까.


정신을 차리게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잠시,

정신을 잃게 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니까.


도무지 맨 정신으로는 살 수 없는 세상이야.

약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술을 마셔도 그렇지 않아도

ー 늘 어지러운 이곳이잖아.


마치 세상이 거꾸로 되어 있는 것만 같아.

넌 어쩜 그리 태연할 수 있니-

넌 어쩜 그리도 해맑게 웃을 수 있어?

넌 어떻게 하루를 더 살 수 있었어?


왜,

왜,

왜.

왜 나만

나 혼자만

이 세상이 어지럽다는 듯 보고 있는 것 같지?


너도,

너도 나처럼 어지럽다 해줘.

마찬가지라고 말해.


누구 때문에, 뭐 하나 덕분에 산다고

누구 때문에, 뭐 하나 때문에 살기 싫다고

난 그렇게 내 인생을 평가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 때문에 살기 싫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다 너 때문이라 하고 싶어.


방금 전에 넘어진 것도

코가 맵다고 재채기 한 것도

옆에 사람들이 시끄러운 것도


오늘 달이 유독 안 보이는 것도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리는 것도


폭풍우가 지나간 것도,

태풍이 불어온 것도,


재앙이 들이닥쳐서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죽어난 것도


전부다

너 때문이라고 하고 싶어.


내 인생도 다 너 때문에 망가졌다고

내 팔이 누가 허투루 재봉틀로 장난친 것처럼 된 것도

전부다 너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넌 누구니-

대체 누구야?


누군진 모르겠지만,

전부 다 너 때문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싶었다.

누군가에 의해 애초부터 잘못 만들어진 실패작이라,

아무리 수습해보려 해도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버려서

계속해서 어긋나는 거라고.


누구 한 명을 콕 집어서 탓하고 싶다.


오늘 아빠가 기분 안 좋은 이유는

과거에 아빠가 이랬던 이유는 저랬던 이유는


오늘 엄마가, 언니가,

네가, 네가 그러는 이유는


전부 다 너 때문이야

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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