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낯설어하지 않는 자들
김복순 씨는 올해 만 나이 70세, 일흔이다.
머리가 심각하리 만큼 지끈거려 집안일 모두 내팽개쳐두고 병원을 향했다. 산더미같이 쌓인 집안일이 걱정이지만 그래도 건강이 우선이었다.
간단한 진료를 받고, 결과를 받았더니 병원에서는 정상이랬다.
그래도 김복순 씨의 딸은 걱정이 태산이라 입원 후 경과를 지켜보자 하였고, 개방병동 자리가 꽉 차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김복순 씨는 병원에서는 집걱정을 하고, 집에서는 병원을 떠올렸다.
엄마들은 내 자식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 따위를 사치라 본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엄마’를 졸업한 김복순 씨를 딸이 챙긴다.
졸업 후에도 김복순 씨는 자식걱정 집걱정이 사라지질 않아 발을 동동 구른다. 딸에게 전화를 건 김 씨 할머니는 병원비가 얼마냐며 자식새끼 학급비처럼 걱정한다.
‘엄마’ 시절 김복순 씨에게 배운 그대로 학급비 따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편하게 있으라는 한 마디와 함께.
나는 내 나은 삶을 증명하기 위해 인생을 소비했는데, 김 씨 할머니는 자식에게 품앗이를 증명하기 위해 남은 인생을 소비했다.
괜찮아 나는 언제나 ‘엄마’니까.
자식들은 정말 엄마를 동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음에 병이 드는 듯하다.
김복순 씨는 이미 어릴 적 그 병을 이겨내 엄마가 됐다.
시끌벅적한 병동 안에서 김복순 씨는 늘 해맑게 웃는다. 두통호소로 입원했다기엔 앞으로, 자신의 변화를 희망한 댔다
엄마는 늘 자신 없다.
엄마는 늘 자존감이 낮다.
엄마는 변하고 싶다. 딸의 마음이 곪지 않게
딸이 동정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는 다 괜찮아. 병원에서 괜찮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