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리크리스마스!
취기로 기분 좋게 물든 어느 밤을 보내며
걱정 많은 식구들은 내 어려운 등을 만지지 못하고
멀리서 질문한다.
오늘 하루 재밌었느냐고
즐거웠느냐고
그리 재미를 기대하지도, 기쁨을 기대하지 않았던
그저 누군가 나를 대신해,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하루였어서 감사했고
누군가 나를 대신해,
하늘에 감사해 주는 하루였어서 뜻깊었고
따듯해서 좋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주인공인 너는 신나 보이지 않는데,
나만 너무 기분 내려고 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사과를 건네는 그들에게
나는 네가 나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잘 살길 바랬고,
그다음으로는 그저 이 세상에 살아있길 바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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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네가 이렇게 무사히 살아있어 줘서
어쩌면 신나는 하루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뻐. 언젠가는 너도 즐겁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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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는 생각에
적막한 가슴이 저려왔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훨씬 어렸을 때에는
바빠도 꼬박꼬박 손 편지를 써서 남겨주는 엄마에게
어느새 안일해져서는
이번 생일에도 엄마 글씨 볼 수 있겠지?
ー라는 생각에 기다리고 있었다가,
바쁜 일정에 컴퓨터 타자 끄적이고
손편지가 아닌 편지를
인쇄해 온 엄마 앞에서
왜 그렇게까지 창피하리 만큼 눈물이 터져버렸을까
그때가 아련하게 생각날 때가 있다.
이외에 다른 사건 사고를 겪고
시간을 지내면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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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힘들었지만 나 자신과
시나브로 지켜질 약속을 맺었다.
앞으로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작은 기대마저 하지 않기로,
괜히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서
냉랭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로,
그 상대방이 친구가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훗날의 연인이 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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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설레고 두근거릴지 모르는 어느 날에도
나는 아무 생각 갖고 있지 않기로.
어떤 게 되었든 덤덤해하기로.
그게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토록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이라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생일은 그저 태어난 날.
어리면 어릴수록 시끄럽고 거창하게 부풀려서
축하하는 날.
어느 어른도 마음이 어려질 만큼
설렐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수없이 많은 곳에 감사한 하루였고,
익숙하지 않은
어쩌면 익숙하기 싫은
시끌벅적한 날이었습니다.
어떤 가족은 성탄절을 축복하며
다시금 평안을 기도하기도,
어떤 연인은 축하하며 사랑을 확인하기도,
차가웠던 두 뺨과 두 손 전부
금방 따듯해질 만큼 몸을 부대끼고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기도 하겠죠.
그래도 덕분에 마음이 잠시동안
어려졌던 것 같아서 마음이 살짝 울적하기도 했어요.
이랬고 저랬던 마음이 보다 더 어려질까 봐
조금은 겁나기도 하지만,
어떤 결심에도 용기는 필요할 테니까
과거를 딛고 일어나 저를 엿보고 있을 미래를 위해
이번 생일을 기점으로, 귀인의 기도와 함께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가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대신해 축복하는 당신들에게 감사했습니다.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태어나지 말걸-생각했던 얼마 전이 생각나
사실 조금 슬펐어요.
하지만,
여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잠시 슬퍼하고 말았다는 게,
아마도 나를 위한 기도 덕분이겠죠?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메리크리스마스.
행복한 성탄이야.
이제 그만, 그만 축하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