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배란테스트기와 빨간 두 줄

배란된 난자의 수명은 고작 하루 정도라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by 명길팍

임신을 결심한 이후로 임신 준비 상태 혹은 기간이 시작되었다. 이는 언제 임신할지 모르는 상태로, 모든 선택을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해야 하는 기간이었다.




먼저, 나는 엽산을 먹기 시작했다. 먼저 출산한 선배들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임신이라는 게 보통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니, 엽산을 먹으며 준비하는 게 좋다고들 했다. 임신하기 약 3개월 정도부터는 엽산을 비축해두는 게 효과적이라고 하여 미리 먹기 시작하였다. 주위에서 임신 준비를 하는 것을 알게 되면 귀찮을 것 같아서 내가 엽산을 먹는다는 것은 남편만 알게 했다. 이건 성가신 일은 아니었다.




술을 일절 먹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지는 남편을 위해 그가 술잔을 받을 일이 있으면 그 술을 먹어주어왔다. 하지만 임신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에, 반주를 즐기는 부모님과 함께 와인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해피아워에 가서도 우리 엄마가 내 몫과 남편 몫까지 대신 마셔주셨다.


그리고 이전에 말했듯이 중앙아시아 출신 인턴이 고향에서 초콜릿 보드카를 사 왔었다. 너무 맛있다고 꼭 마셔보라고 직장 동료가 나에게 한 잔 건넸는데, 나는 당연히 거절해야 했다. 내 거절이 이해되지 않는 그 동료는 계속 정말? 왜? 하면서 물었으나 임신 준비 중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다소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임신 준비 기간에 가장 거슬렸던 건 출장과 이직의 문제였다. 중국으로 출장 갈 기회가 있었고 나는 내 직무상, 우선순위로 선택될 수 있었다. 중국을 방문해본 아는 사람마다 그리고 팔로우한 한국인 KOL들도 중국 화웨이의 AI 부스가 엄청났다고 감탄을 하며, 큰 나라는 이렇게까지 투자할 수 있구나라고 했기에 나도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임신한상태일 수도 있어서 지원할 수가 없었다.


이직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계속 이직해야 월급이 오르는 구조이고,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은 자기 개발이나 도전에 소극적인, 즉 complacent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이미 한 직장에서 몇 년 일한 나는 이제 슬슬 이직을 준비할 타이밍이었다. 임신이 언제 될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임신될 거라며 이직을 안 알아보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의 인성 좋은 상사가 내 상사일 때 임신하라며 내 이직 고민을 질색팔색을 하셨다.

곧 임신하면? 병원 갈 휴가를 세이브해둬야지!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이직 인터뷰들을 위해 휴가를 낭비할 거야? 지금 네 상사는 그동안의 행동을 보았을 때, 네가 임신하면 편의를 많이 봐줄 사람이야. 그 사람 밑에 있을 때 임신해. 이직하자 마자 임신하면 누가 좋아해? 그리고 월급은 나중에도 올릴 수 있지만 임신은 더 미루면 이제 힘들어지기만 해.


엄마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이미 3개월 정도의 임신 시도를 한 후였다. 계속되는 임테기의 한 줄을 보며 생각보다 임신하기까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그래도 혹시 임신이면.. 싶어서 엄마 말을 듣기로 하였다. 그리고 내가 임신 계획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팀의 한 여자 선배가 나한테 지금이 임신할 적기라며 내가 몇 년 일한 만큼, 그리고 결혼한 지 몇 년 된 지 아는 만큼, 모두가 이해해 줄 상황이라고 했다. (이후 실제로 내가 임신을 해 천사 같은 나의 상사가 편의를 봐줘 재택근무할 때도, 나는 임밍아웃을 하지 않았고 상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모두 내가 임신한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 팀만이 아니라 나를 아는 모든 회사 직원들은 알고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 아무도 서로 명시적으로 물어보진 않았으나 모두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턴들만 내가 어디갔냐고 물어봤다고.)




결국 나는 배란기 사이클을 네 번 정도 시도를 하고 임신이 되었다. 처음 세달은 생리주기 앱에서 높은 확률로 임신 가능한 주기라고 나오는 주 주말에 시도를 하였다. 나는 그 주기에는 내내 임신이 가능한 줄 알았다. 그리고 이는 틀린 말은 아니다. 배란날짜를 생리주기로 계산했을 때, 하루단위로 정확하지가 않고 정자가 며칠 살아남아 배란되는 난자와 만날 수 있으니 높은 확률로 임신될 수 있는 주기가 있는 거다. 하지만 실제로 배란된 난자의 수명은 약 하루고 이때를 맞춰 수정이 돼야 임신이 된다는 것을 나는 자세히 몰랐다. 즉, 부부관계 관점에서는 임신 확률이 높은 일정 기간이 있지만, 난자의 입장에선 단 하루 정도만 결정적인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달에 배란테스트기를 쓰자 임신이 되었다.


첫 시도에는 한 2주 정도 지나자 가슴이 너무 커지고 단단해져서 아팠다. 이건 평소의 월경 전 증후군과는 달랐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바로 임신한 줄 알았으나 임신 테스트기는 몇 번을 해봐도 한 줄이었다. 그리고 주기가 정확한 내가 예정일보다 약 10일이 지나서야 다시 생리가 시작되었다. 이는 정말로 임신했을 때, 내가 이번에도 또 유난한 월경 전 증후군이겠지로 여겼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수정은 됐는데 착상을 못 한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산전검사를 갔다. 산부인과 의사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과 함께, 임신하려면 부부관계를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해 보라는 얘기와 함께 1년 동안 해도 안 된다면 다시 오라는 얘길 들었다.


그리고 배란테스트기를 쓴 그 주기, 임신을 하게 되었다.

토요일 연재
이전 01화0화: 이 시대에 임신할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