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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은 Jan 02. 2022

7.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나

"뭘 그렇게 통곡을 해. 아빠 뻘쭘하게.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쿨한 척을 했어?"

"나도 가고 싶어서 가는 거 아니거든요?"

"아니, 그럼 왜 가냐? 내가 뭐 너 납치라도 했냐?"

"어차피 혹일 거면 아빠한테 붙는 게 낫지."

"뭐?"

"아빠도, 혹 없으니까 모델 아줌마랑 결혼했죠? 저 엄마도, 용식이 아저씨랑 결혼이나 하라고 해요!"

"아, 너, 그래서 나한테 붙은 거야?"

"다 결혼만 해. 왜 나만 두고 다 결혼만 해. 무슨 엄마 아빠가 다 결혼만 해."


-<동백꽃 필 무렵> 18화 중-


엄마와 살 지, 아빠와 살 지 결정하던 그 기간을 거치면서

엄마가 아저씨랑 결혼하려면 내가 없어야 좋은가보다.

아빠는 이미 아줌마랑 얘기가 되어 저렇게 살고 있을 테니

나만 가면 다 해결되는구나. 나는 엄마한테 '혹'이구나.

그러니 나는 가야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구처럼 아빠 집으로 떠났다. 

필구처럼 쿨하진, 쿨한 척 하진 못했다.

원망하고,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다행히도 나의 친 부모님, 그리고 함께 살게 된 아줌마는 

그렇게 동굴 속에 들어간 나를 특별히 바꾸려 하거나, 

미안함으로 과대 포장된 관심을 내비치거나 하진 않았다.


그 무렵의 나는 (원래도 게임을 좋아하긴 했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잠들기 전까지 게임을 했다.

주말에는 14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그럼에도 딱 한 번 아빠에게 혼난 것 빼고는, 크게 터치하지 않고 내버려 두셨다.




그렇게 밑바닥까지 내려가다 보니,

이렇게 회피하며 사는 것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바꾸지 못할 것을 바뀌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이렇게 살면 내가 행복한가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란 건 알겠는데, 마음과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이 감정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지, 그냥 억지로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인지

방법을 통 알 수가 없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겨서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엄마, 아빠가 이혼했으니까.

왜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지? 둘이 갈등을 결국 해결하지 못했으니까.

그럴 거면 둘이 왜 결혼했지? 왜 나를 낳았지? 

왜? 왜? 왜 그랬지?


근데 엄마, 아빠가 이럴 줄 알고 시작했나?

왜 그랬냐는 질문을 던지는 게 의미가 있나?

나는 왜 자꾸 왜, 왜 거리고 있지?




나는 나 스스로에게 계속 의미 없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답이 있지만, 답이 없는 것들.

그 종착지엔 무언가 묘책이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게 한 질문들.


이혼했을 첫날의 부모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이삿짐을 다 싸서 보내고, 구형 베르나에 나를 태워 이제는 전 남편이 된 사람을 뒤로하고 할머니 집으로 향했을 엄마의 모습. 그리고 마침내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평소완 달랐을 그 떨림과 긴장감, 불안, 걱정, 그리고 슬픔. 짐을 풀고 침대에 몸을 뉘었을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물건과 온기가 다 빠진 우리 가족이 살던 그 집. 차갑디 차가웠을 바닥에 이부자리 하나를 펴 놓고 누웠을 아빠의 모습.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곳에 악의가 있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결국 나의 '왜'들은, 누군가를 과녁 삼아 뾰족한 마음들을 겨누기 위한 질문들이었다.




탄알을 버리는 연습을 했다.

한 동안 뾰족하게 깎는 일만 한지라 어려웠지만

이 탄알들은 결국 돌고 돌아 나를 찌를 것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더 확대하지 않고, 

맘대로 해석하지 않고,

오롯히, 그리고 그로부터 쓸모없는 감정을 부풀리지 않도록,

하지만 무시하지는 않고,

그저 슬펐던 과거의 나를 한 장의 사진처럼 가볍게 남겨두는 작업을 했다.


가끔 들여다보며 그때의 물기로 다시 촉촉해질 수 있지만,

딱 그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게.

그리고 나는 일어서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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