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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은 Sep 22. 2021

6. 원망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나

그리고, 그러다 나 고2때, 엄마가 재혼할 사람이 있다고 고백했지.
충격이었어.
이젠 우리 엄마가 아니라 그 남자의 아내가 되겠구나...하고
하지만 평생 박복했던 엄마 인생을 생각하면,
엄마를 좋아해주는 사람하고 사는 건 축하해줄 일이라고 생각했어.

사실 그 때까지 난 약간 강박관념이 있었어.
엄마를 지켜줄 사람은 나뿐 이라고.
다아~ 내 착각이었던거야. 집안 어른들이 나보고 엄마 좀 놔주라더라.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는거라고.
나도 어른이니 이젠 나이에 맞게 처신하래.

뭐, 말이야 맞지. 근데,
난 운이 없구나.
나란 애는 운도 지지리 없구나.
그런 생각만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어."


"언니. 많이 힘들었네요."


"그런데, 안될 줄 알았던 냥이 주인이 나타난 걸 보고...
그냥 내가 부정적 생각의 루프를 끊어야겠다 싶었어.

외톨이던 내게도 어느새 곁을 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더라.
그 사람들이 내 안부를 묻고 찾아와 주었어.
좋은 사람이란 소리 안 들어도 괜찮고,
누굴 미워만 하는 피곤한 감정에서 벗어나 살고싶어.

30년간 증오로 가득찬 인생을 살다보니 이젠 피곤하더라.
이번 기회에 작은 일이라도 좋은 것들로 인생을 채워가고 싶어."


-네이버 웹툰 <은주의 방> 3부 178화 중-



우선 내가 어떤 것으로 인해 불행을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야했다.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나열해보자면 몇 가지가 있었다.



엄마에 대한 상실감.

아빠에 대한 원망. (아빠는 육아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유대감이 없었다.)

정상적인 가정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열등감.

시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부끄러움.



열등감과 두려움 같은 것들은 그럭저럭 이겨낼 만했다.

그것을 나의 큰 흠으로 생각하고, 나를 흉보는 사람들과는

잘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아빠를 너무 원망했다.

이혼의 원인이 모두 아빠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빠 때문에 빚더미에 앉아서, 아빠가 엄마에게 못돼게 굴어서, 아빠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아빠가 돈만 잃지 않았어도, 아빠가 엄마한테 조금만 상냥했어도, 아빠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았으면.

그랬다면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상실감도 절대 느낄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아빠와 함께 살게 되기 전, 엄마는 나에게 아빠와 살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물었고

나의 생각을 존중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완강하게 엄마와 살고자 했는데, 엄마는 아빠와 살기를 설득하셨고

결국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엄마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와 살고 싶다고 계속 주장했는데, 결국 종착지는 아빠 집이었다.

엄마도 나 같은 건 혹부리라고 생각하여 떼어내고 싶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근데 부모님을 계속 원망한다 해서 두 분이 다시 재결합할 일은 없었다.

이미 각자의 가정을 꾸렸고, 엄마와 아저씨 사이에서는 아이도 생겼다.

내가 아빠를 원망하던 원망하지 않던, 난 아빠와 함께 살아야 했다.


내 생각과 마음에 관계없이 이미 다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내 생각과 마음에 관계없이 돌이키거나, 바꿀 수 없다.

그럼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 없었다.





난 운이 없구나.
나란 애는 운도 지지리 없구나.
그런 생각만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어.


억울했다.

내가 자초한 일도 아닌데, 내 마음밖에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내가 바라지 않던 일들만 잔뜩 일어나 놓고, 내가 이해해야 한다는 게 분했다.


내 마음을 바꿔먹는 것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아빠와 엄마를 위한 것인 줄만 알았다.

한 마디로 피해 입은 건 난데, 남 좋은 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철저히 나를 위해 해야 하는 행동이었다.








누굴 미워만 하는 피곤한 감정에서 벗어나 살고 싶어.
30년간 증오로 가득찬 인생을 살다보니 이젠 피곤하더라.


깨어있는 시간의 1시간만 누구를 미워하는 데 쓴다 해도, 일주일이면 7시간이나 분노한 상태로 지내야 하는 것이었다.


피곤하다. 원망은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계속된 긴장 상태, 그리고 경직된 행동으로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이혼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부모님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그 감정은 철저히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그것은 어떠한 상황도 좋게 바꿀 수 없고,

나를 피곤하고 힘들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힘든 나를 내가 괴롭히고, 깎아먹는 행동이었다.

나는 내가 처한 현실 속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좋다. 첫 번째 단추는 꿰어졌다.

내 행복의 실마리는 원망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인식하지 않아야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내 마음을 바꿔먹을지를 고민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억지로 바꾸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포기하면 모두가 편하니까라는 말은 나를 포기한 거나 매한가지였다.


가장 이기적인 방법으로 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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