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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은 Aug 22. 2021

5. 이타적 명분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나


"사실, 지금 아빠 말이야, 새아빠야.
엄마는 나 대학 1학년 때 재혼하셨어.
친 아빠는 나 중2때 집을 나갔어.
평생 자기 좋을 대로만 살다가.
결국, 젊은 X랑 눈 맞아서 나갔어.
아마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서 못할 인간이 그 사람 일 거야.

그리고, 그러다 나 고2때, 엄마가 재혼할 사람이 있다고 고백했지.
충격이었어.
이젠 우리 엄마가 아니라 그 남자의 아내가 되겠구나... 하고"

-네이버 웹툰 <은주의 방> 3부 178화 중-


이젠 우리 엄마가 아니라, 그 남자의 아내가 되겠구나.

이젠 우리 엄마가 아니라,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되겠구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엄마를 뺏긴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알았지만, 그게 바로 되는 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나를 스스로 납득시켜야 했다. 받아들여도 괜찮은 이유들로 꽉 채워 나에게 설명해야 했다. 

받아들여도, 받아들여야 내가 아프지 않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시켜야 했다.


그래서 그 이유들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1. 부모님 인생과 내 인생은 다르다.


나는 부모님의 종속 하에 태어나긴 했지만, 철저히 독립적인 개체임이 분명했다.

만약 나나 부모님이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식 때문에라도 참고 산다는 마음으로,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다 한들,

평소에는 얼음장같이 차갑고 싸울 때는 용암처럼 뜨겁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살고 있다 한들,

그 누가 행복할까.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집.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었을까?


단언컨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부모님이 다투지 않고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한데, 나 때문에 계속 가정의 형태를 유지하며,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면

내 욕심에 부모님이 불행한 가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 미안함과 죄책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2.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만약, 내가 이혼하려는 상황에 부모님이 두 팔 걷고 나서서 말린다면?

이혼 후에, 좋은 사람을 만나 재혼하려고 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다른 상황과 이해관계이긴 하지만,

나의 판단과 행동을 부모님이 반대하고 뜯어말린다면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슬펐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부모님의 행동을 말리는 것은

곧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겠다고 판단했다.

부모님의 행복을 위해, 이해해야 했다.




3. 외롭게 혼자 살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친엄마, 친아빠 사이의 자녀는 나 혼자뿐인데,

만약 두 분이 재혼하지 않고 홀로 사신다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나뿐이었다.


과연 부모님이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좋은 일일까?

각자의 집에서 홀로 사시는 모습을 생각하니,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두 분은 사교 활동이나 취미 생활에 적극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다.

혼자 사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의 불편함 때문에라도 

내 생활의 일부를 덜어내고 두 집을 왔다 갔다 하며 부모님 곁에 머물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 한계가 있을게 분명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엄마, 아빠 옆에 있어주는 게,

재혼해서도 또 지지고 볶고 싸우더래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또래의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게, 

우리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우 아빠랑 좋아한다구?'

  미르는 아빠가 다른 사람과 재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더 큰 배신감에 휩싸였다. 미르는 자기에게서 아빠를 떼어 놓은 엄마니까 평생 미르 자신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재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미르는 피아노 위에 있던 꽃바구니를 마당에 내동댕이쳤다. 바구니에서 쏟아져 나온 꽃은 목이 부러져 나뒹굴거나 아예 바스러져 버렸다. 미르는 조금이나마 속이 시원해졌다.
 
  엄마가 빈 바구니를 들고 미르 방으로 들어왔을 때 미르는 침대 위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었다. 미르는 엄마를 못 본 척하였다.

  "미르야, 이 꽃 네가 그랬니?"

  엄마가 미르 옆에 와서 앉았다. 침대가 출렁거렸다. 미르는 침묵으로 시인했다.

  " 왜 그랬어?"
  "······."
  "엄만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무슨 오해가 있다면 이야기로 풀어야지. 혹시 이 꽃바구니 바우 아버지가 준 거라서 그런 거니? 그래서 그런 거야?"

  미르는 엄마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이 뜻밖이어서 일어나 앉았다.

  "엄마랑 바우네 아빠랑 서로 좋아하는 거 정말 맞아?"

  미르를 빤히 바라보던 엄마가 풋, 하고 웃었다.

  "누가 그런 소릴 해? 바우가 그러데?"
  "아니, 소희가. 바우가 그렇게 알고 있대. 그래서 아까도 자기 아빠 여기 있는 거 보고 화나서 그냥 간 거래. 걔 요새 나한테도 얼마나 쌀쌀맞게 구는 줄 알아?"
  "엄마랑 바우 아버지랑 서로 좋아하면 안 되니?"

  미르는 엄마가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자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우리 미르도 이제 엄마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컸다고 생각해.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미르는 긴장이 돼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엄마는 회장님을 존경해. 갖고 있는 생각이나 살아가는 모습이 배울 게 많은 분이야. 사실 엄마는 회장님을 알기 전에는 사람을 학력이나 재산, 지위 같은 것으로 평가한 적이 많았어. 그런데 회장님을 보면서 그런 편견을 버리게 됐어. 달밭에서 와서 얻은 기쁨 중 하나가 회장님 같은 친구가 생겼다는 거야."
  "그래서 바우네 아빠랑 결혼할 거야?"

  미르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하고 끊었다. 엄마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엄마는 사실 네 아빠랑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어. 아빠하고 대화를 통해 슬기롭게 헤쳐 나가지 못한 엄마한테도 책임이 있지만 너무 힘들었어. 다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아직까진 조금도 없어."
  "그럼 나중엔 할 수도 있단 말이야?"
  "글쎄, 미르가 나중에 커서 시집가 버리면 너무 외로워서 할 수도 있지."

.
.
.

  "그런데 꽃은 왜 준거야?"
  "회장님 계실 때 네가 엄마 생일 이야기했잖아."

  미르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일이었다.

  "회장님이 알고서 그냥 지나치기가 서운하다며 선물을 사 주고 싶다고 하셨어. 그래서 엄마가 꽃이나 사달라고 했어. 꽃은 받는데도 부담스럽지 않고 사는 사람도 편할 것 같아서 그런 거였는데, 그게 너희들한테 엉뚱한 오해를 샀구나."
  "그런데 왜 나한테 이야기 안 했어?"
  "네가 언제 물어보기는 했니?"

  엄마가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난 아빠가 보낸 건 줄 알았단 말이야. 미르는 그 말을 꿀꺽 삼켰다. 엄마가 미르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걷어올리며 말했다.

  "이제 오해 풀렸지? 하지만 엄만 네가 나중에라도 엄마를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 이해해줄 때가 오길 바랄게. 엄마도 여태껏 미르 너를 내가 낳았으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여겨 왔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엄마도 앞으론 조심할게."

  엄마의 말은 미르의 가슴에 출렁, 하고 떨어져 물무늬를 만들었다.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 한 인간? 우리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 한 인간이라구? 엄마가 모녀라는 관계의 끈을 가위로 싹둑 자르는 느낌이 들어 서운했지만, 엄마가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은 것이 기분 좋았다. 앞으론 예전처럼 엄마에게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미르는 마음 속에 바우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말들이 떠올랐다. 바우 역시 미르가 그랬던 것처럼 아빠의 희생을 '아빠니까.' 하면서 당연하게 여겨 왔을 것이다. 아빠를 아빠이기 전에 한 남성, 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 이금이 장편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 중-


결국 중요한 사실은,

부모님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고,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부모님의 인생은 부모님의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원망스러운 마음을 품고 괴롭혀봤자 하나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명분들의 주체는 내가 아닌 부모님이었다. 

즉, 이타적인 명분이었다.

내가 없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이해하고, 달래줄 이기적인 명분들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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