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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은 Apr 01. 2023

9. 자유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나


[김도인] 철학이나 심리할 때 항상 문제 원인을 규명하려고 하거든요. 왜냐면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원인이 항상 유년기의 경험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연습하다보면 어떤 문제를 겪을수밖에 없냐면 인정은 해요. 아 그래 어렸을 때 어쩔 수 없었지 부모님도 그런 문제가 있었고, 먹고살기도 힘들었으니까 나한테 이런일이 있었던거야라고 하지만, 끝끝내 자기가 지금 거기 문제로부터 영향, 피해를 받고있으면 부모나 양육자에 대한 용서가 불가능하거든요. 그러면 항상 어떤 시각으로 자기가 세상을 경험하게 되냐면 자기연민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돼요. 어렸을 때 부모가 나한테 그렇게 했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어떤게 있냐면 그렇게 하면 안됐어, 그 사람들은 어렸을 때 나한테 상처를 줬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있고, 그 피해를 지금 내가 받고있어, 라고 하거든요. 근데 자기연민이 일시적으로 자기위안이 될 수는 있는데 뭐는 못해주냐면 자유를 얻게는 못해주거든요. 자기연민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어떤 시각의 경험을 촉발되냐면 자기가 뭐든지 피해자인거에요. 그러니까 부모와의 관계에서 이미 벗어나서 자신이 성인이 됐으면, 과거 경험이 어쨌든 자기가 수용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돼요. 왜냐면 경험 자체를 삭제할수는 없는거에요 과거 기억을 삭제할수는 없으니까. 그럴려면 노력을 해서 자기가 그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는 부모와 있었던 어떤 충격적인 사건도 용서할수 있고 없고는 그냥 자기 자율적 선택인거에요.

[채사장]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모든 문제를 과거에 대해서 다 책임을 전가시켜가지고 얘기해서는 안된다 라는거에요?

[김도인] 네. 이건 핵심적인 사건이니까 자꾸 부모와의 양육관계를 말하는거지, 어떤 문제가 촉발될 때 한 가지 원인 때문에 한 가지 결과가 발생하는건 없어요. 이걸 불교에서 인과론이라고 하는데 인연론, 여러가지 조건들이 상호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 때문에 결과가 발생하는 거에요. 근데 본인이 생각하기로는 그게 딱 하나, 부모의 잘못됨에 내가 이렇게 됐어, 라고 일대일 대응으로 생각하는 거죠.

-팟케스트 <지대넓얕> 성격장애 1화 중-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나서 깨달은 것은 믿을 것은 나밖에 없다는 것.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이것을 대신 해줄수 없고, 그래선 안되기에,

나를 믿어야하고, 이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외부로부터 온 환경 요인을 아무거나, 그리고 아무렇게나 받아들이면 안 된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모든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외부만이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스스로를 케어할 수 없는 멍청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된다.


그렇기에 참는 것과는 다르다. 참고, 견디고,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위로하고, 과거에 발목이 잡혀 나를 좀먹는 내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가령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며 신세한탄을 하는 친구에게 그렇지 않다고, 너는 좋은 사람이라고 위로하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겨낼 수 있다고, 과거의 터널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것이다.

과거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를 독립시키는 것이다. 독립하지 않으면 고여있게 되고, 고여있게 되면 썩어버릴 수 밖에 없다.


솔직히 그런 힘든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 단단해진 내가 있게 된거라는 말은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좋게 포장하려고 애쓰고 싶지 않다.

싫었던 일은 싫었던 일이고, 슬펐던 일은 슬펐던 일이다. 예쁜 포장지로 덮는다고 해서 고마운 기억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나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겪었고, 경험치가 쌓였기 때문에, 전보다 맷집이 좀 세졌다. 이것도 유년 시절 경험 '덕분에'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과거보다는 커진 그릇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좀 더 덤덤하고, 안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치가 조금 올랐을 뿐이다.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 과정을 겪은 자녀로서 비슷한 과정을 겪은, 또는 겪고 있는 부모님들께 하고싶은 말은 딱 한 가지이다.

자녀에게 미안함을 기반으로 한 특별한 선의를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접어둘 것.

그것은 자녀의 자기연민을 더 강화시켜주는 독이 된다.

그 선의에 설득과 독촉의 의도를 담고 있다면 더 독한 독이 된다.


형태와 관계 없이 엄마, 아빠는 여전히 너의 부모님이라는 것.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것.

이해해주면 좋겠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언제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족의 붕괴를 겪은 아이들의 부모님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철학자] 공부하는 것은 아이의 과제일세. 거기에 대고 부모가 "공부해"라고 명령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에, 비유하자면 흙투성이 발을 들이미는 행위일세. 그러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지. 우리는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청년] 분리해서, 어떻게 한다는 거죠?


[철학자]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것뿐일세.

(중략)

[청년] 그러면 아이가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것은 아이의 과제니까 방치라하는 겁니까?

[철학자] 여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네. 아들러 심리학은 방임주의를 권하는 게 아닐세. 방임이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라네. 그게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는 것. 공부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이 본인의 과제라는 것을 알리고, 만약 본인이 공부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전하는 걸세. 단 아이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하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래러저래라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중략)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네.

-<미움받을 용기> 세 번째 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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