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편견
[아이키] 연우야 숙제 없어?
[연우] 몰라.
[아이키] 어차피 숙제 잘 안 하잖아. 괜찮아. 선생님이 숙제 왜 안 했냐 그러면, 어차피 어른되면 다 해야 된다고 그래.
-<전지적 참견시점> 2021년 10월 09일 방송 중-
고등학교 3학년, 난생처음으로 개근상을 받았었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꾀병을 부려서라도 주기적으로 학교를 빠지던 아이였다.
엄마는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는 나의 단 한 마디에, 오늘 등교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학교에 전화를 걸어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준 뒤, 정말 쿨하게 출근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학교에 빠지는 날이면 꾀병 부린 것에 스스로 벌이라도 주듯, 머리가 지끈거릴 때까지 테이프를 돌려봤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줄여서 '와우'라고 한다)라는 게임을 8살 때부터 했다.
그 게임의 묘미는 사실 최고 레벨이 되어야 느낄 수 있는데,
근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던 '진드감치* 못 하는 아이'는 게임을 시작한 지 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첫 최고 레벨을 찍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만끽하며 게임에 미친, 시험 기간에는 최대한 많은 게임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극한의 효율로 벼락을 치는 어린 제우스의 삶을 살았다.
*진드감치는 어느 지역에서 쓰는지 모를, 하지만 우리 가족들이 잘 쓰는 말 중 하나로, '진득하게'라는 뜻임
"지금 아니면 놀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1년 동안 빡세게 놀겠습니다."
대학교 3학년, 학년을 끝내자마자 휴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집안의 어떠한 이유로 처음으로 엄마가 작은 반대를 했다.
자격증이든, 시험이든, 자기계발 계획을 세우고 휴학동안 그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여튼 나는 완강히 거절했는데, 다행히 엄마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고 심지어 캐나다행 비행기 값을 보태주셨다.
그 여행을 시작으로 그동안 모았던 장학금을 탈탈 털어서 정말 여기저기 쏘다녔다.
그중에서도 혼자 했던 여행은, 내 인생관의 기류를 바꿀 만큼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학교를 진드감치 다니지 못하던 아이,
공부는커녕 게임조차 진드감치 못 하던 아이,
그러다 게임만 하고 여전히 공부는 진드감치 못 한 아이
내 어린 시절에 프레임을 씌워보면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휴학 후 1년 간 주5일 오전 필라테스도 해보고,
2년 간 전화영어 수업도 꾸준히 들어보고,
덜커덩 거리며 대학원도 졸업하고,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도 해보았다.
그야말로 진드감치 못해 걱정 받던 인간의 나름의 성취랄까.
그리고, 이 성취는 스스로의 고민과 선택, 그리고 오롯히 나로부터 우러나온 행동으로 일궈졌다.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결정해 보라고요.
하지만 몇몇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좋아야 하고,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여러분 가족과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삶의 여러 영역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말은, 무엇을 고귀하게 여겨야 하는지에 제한 조건이 몇몇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제한 내에서는, 여러분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선택권이 있는 겁니다.
중요한 점은, 어떤 짐을 짊어질지 정한 사람은 그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진다는 겁니다.
-조지 피터슨 한국 공식 채널 <남자에게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중-
하루에 3번 양치를 하는 것,
방을 어느 정도 정리하는 것,
하루에 일정시간 이상 공부하는 것,
그 하기 싫은 시간을 견디도록 채찍질하는 것을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도와주는 것'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속담으로 남을 만큼,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에 많은 노력을 들인다.
하지만, 이 말이 전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습관이 들면 왜 좋은지,
들지 않으면 무엇이 좋지 않은지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을 나열해 보는 것,
어떤 게 나에게 이로울지 가늠해 보는 것,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것.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공부해야 할 진짜 인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