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은 Apr 01. 2023

돈 안 되는 무쓸모 기초과학

생태는 물고기가 아니라...


때로는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과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있다.
가령 명절에 오랫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그래, 요즘 뭐 하고 있나?”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따라서 틀리겠지만 열심히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했더니 그 친척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볼 때가 있다. “….그걸 연구하면 앞으로 전망이 좋은가?” 보다 직설적인 분이라면 이렇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거 하면 돈 돼?” 


- Secret Lab of a Mad Scientist <돈 되는 기술의 원천을 찾아서 : PCR 이야기> 중-




"선배, 이미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UN에서 2022년을 세계 기초과학의 해로 지정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그런 건 처음 듣네."



"네. 한국에서 선포식도 하고 추진위원회도 생겼었대요. 한국에서도 코로나 터지고 나서 기초과학 해야 한다고 뉴스도 칼럼도 많이 나오고 교수님들이 모여서 포럼 같은 것도 하시더라구요. 근데 저는 얼마 전에 연구보고서 쓰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어요. 꼭 마지막에 어떻게 실용화시킬 수 있을지 적으라고 하잖아요. 기초과학 연구자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니에요?"



"어어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기초연구 하면서 그런 걸 왜 생각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제 대중들은 그런 것들을 원하지. 직관적이고, 직접적이고, 피부로 와닿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어야 아, 저 연구가 진짜 유용하구나. 근데 사실 기초과학이 실생활에 당장 유용하긴 어렵지, 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불가능하지. 애초에 유용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나아온 발자취의 특성상 그런 기질을 아직 못 버리지."



"저도 공감해요. 뭐 당장 우리 단과대만 봐도 같이 생물 공부 하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생태 연구 같은 거에 깊이 공감하진 못 하더라구요. 그게 정말 답답하게 느껴졌었는데. 결국엔 응용과 실용, 요즘에는 노벨상까지 꺼내들어서는 기초과학이 진짜 뭐라도 당장 해줘야 하는 양 하더라구요."



"그렇지. 노벨상도 정말 잘 모르겠어. 그 대단한 Carl Woese도 노벨상을 못 탔는데. 생각해 보면 기초과학, 그중에서도 생물학으로 노벨상을 탄 사람은 진짜 없지. 노벨상을 타야겠다 싶으면 기초과학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남들이 아무도 하지 않는,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한 연구를 해야 하지. 분야에 상관없이."



"그러니까요. 노벨상 수상자를 만들기 위해 기초과학 연구자에게 투자해야 한다라... 정말 웃긴 말이에요. 저는 기초과학의 역할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을 때, 저는 딱 그 예시가 알맞다고 생각했는데, PCR 만든 사람이 결국 노벨상을 받기는 했지만, 만약에 그 기저에 Taq polymerase*에 대한 발견이 없었다면 개발되기도 어려웠을 거잖아요. 근데 사람들은 PCR에만 집중하고 있죠. 사실 그 안에 깔린 기초과학이 정말 무궁무진한 건데."


*Taq polymerase (Taq 중합효소): 1976년 존 트렐라 (John M Trela)가 호열성 미생물 Thermus aquaticus로부터 분리한 DNA 중합효소




"뭐 실생활에 많이 쓰이는 기술이 주목받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같이 과학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서러움은 있다. 하하."


"맞아요. 저도 얼마 전에 발표했는데, 채소마다 다른 미생물 군집을 가지고 있다가 주제였거든요. 그런데 한 교수님 질문이 '그래서 무슨 채소를 먹어야 좋은 겁니까?'였어요. 참 진이 빠지더라구요 하하."


"참 공부하기 고달프다-."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고,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서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은 주객(主客)이 뒤바뀌고, 본말(本末)을 혼동한 것이다. 기초과학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세상 만물과 생명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세계관’(world view)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지금도 그런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이덕환의 과학세상] 국내선 변질된 유엔 ‘세계 기초과학의 해’ 지정 의미> 중-






매거진의 이전글 쓸모-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