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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히 Jul 26. 2024

추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공감은 나를 어둠 속에서 꺼내주고


딘의 ‘Instagram’이라는 노래가 거리 곳곳에 흘러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스타그램 계정조차 없었다.


'Facebook'스무 살 이후 대학 동기들 친구를 맺기 위해 계정을 만든 정도.


그랬던 내가 현재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300여 개

가까이 된다. SNS의 순기능을 처음 알게 된 건 스무 살 무렵,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을 무렵 즈음.


-


나는 인생에서 첫 번째 이별을 경험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데이트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랑한다는 말로 서로 온기를 주고받았던 사람과 불과 이틀 뒤 이별의 말을 주고받은 후에 완전 남남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와 만났던 친구는 대학 동기라 매일 마주칠 수밖에 없었지만, 인사조차 하지 않는 우리는 동기라 할 수도 없고 친구라 할 수도 없는 그냥 모르는 사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CC(Campus Couple)을 극구 말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색한 얼굴로 매일 마주쳐야 하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었다.원래 이별이 이런 건가?’

이별이 처음이라 알 길이 없었다. 사실 그 친구와 깊은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만난 것도 아니었다. 이별의 이유도 큰 싸움이 있었다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사랑을 했다라기보다는 그냥 연애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감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내 삶의 70퍼센트 이상 차지하던 사람이 헤어지자는 단 한마디로 인해 이렇게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다고?



나는 어렸을 적부터 '다이어트'라는 단어와

함께 살았었다.


먹는 걸 너무나 사랑했고 또 먹는 만큼 족족 찌는 타입이었고 움직이는 것도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살이 찌는 건 당연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과 시선으로 인해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다짐은 학창 시절 12년 동안 약 120번 이상은 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전할 때마다 실패했기에 나의 자존감은 점점 하락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에는 80kg가 넘는 몸무게에 도달했다. 고도비만까지 갔지만 비만이라는 단어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도 익숙하게 듣고 자랐기에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주변 어른들은 나에게 살을 빼라는 말을 많이 했지만 나 스스로는 나의 몸이 그렇게 까지는 나쁘지 않다며 합리화하고 여전히 폭식과 게으름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물리 수업 때 자신이 만든 ppt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발표하는 내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달라고 친구한테 부탁했다. 성공적으로 발표가 끝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상을 확인하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발표 내용은 안중에도 없었다. 평소 모습을 영상으로 볼 일 많지 않은가. 영상 속 내 모습은 말 그대로 가관이었다.

하체보다는 상체에 살이 많이 찌는 편이라 더 심각한 상태였다. 턱과 목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그때 인생에서 제일 본격적이라 할 수 있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3개월 동안 약 15kg 정도 감량을 하여 어느 정도의 성공을 맛보긴 했다. 그렇지만 다이어트를 하며 인생의 불공평함에 멘붕이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 여고를 다녔었는데 나보다 날씬한 친구들이 나보다 더 많이 먹는 게 아니겠는가. 특히 야자(야간자율학습)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운동을 할리는 없고 활동량도 나랑 비슷했다.

 

'나는 먹고 싶은 음식들을 꾹 참으면서 고구마와 샐러드 같은 것만 먹고 있는데 왜 급식 두 번씩 먹는 저 친구들보다 뚱뚱한 거지?'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고 체적으로는 살이 빠졌다 쪘다를 반복하다 스무 살이 되었고, 스무 살에도 인생의 두 번째 본격적인 다이어트가 시작됐다. 그 다이어트 덕분에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인생 최저 몸무게를 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될 수 있던 이유도 SNS의 역할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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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터넷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공감받고 공감하는 게시물들이 많았다. 이제 막 SNS가 활발해지는 정말 ‘소셜 네트워크의 장’이 열리기 시작하는 단계였던 것이다.


‘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원래 이별이란 이런 것이고, 연애는 한순간 피고 지는

벚꽃 같은 거구나.’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때문에 힘들어하는구나.’

'고구마와 닭가슴살만 먹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게

나뿐만이 아니구나.'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고충이 있고, 그 고충을 이겨내기 위해 힘쓰며, 그걸 딱히 남들 앞에서 티를 내지 않았던 것뿐이는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현실의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나의 위치에서 내가 해야만 하고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SNS가 없었다면 나의 첫 번째 이별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며, 아직까지도 인생의 불공평함에 우울해하고 내 인생만 힘든 것 같다며 신세한탄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무 살이 지나고 스무 살 중반쯤 되어가면서부터는 인스타그램의 인기가 활발해졌는데 관심 있는 분야의 게시글을 보기 위해 계정만 만들었다가 지금은 '인스타그램 러버(Lover)'가 되어버렸다.


예전부터 나는 ‘추억’을 굉장히 소중히 여겼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이냐 물어보면 첫 번째는 가족, 그다음은 무조건 ‘추억’이라고 답을 하고는 했었다. 그래서 내 보물 1호인 추억 상자 속에는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장과 받은 상장,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받은 편지와 카드, 내가 좋아했던 책 등 내가 평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점점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진이나 영상들을 보관하기 수월해졌는데,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기 위해 매월 정기결제까지 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을 기준으로 내 클라우드에는 총 229,214장의 의 사진과 9,841개의 동영상이 보관되어 있다.
사진작가도 아니고 인플루언서도 아닌데 이렇게 사진과 동영상이 많은 이유 중 하나도 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는 실수로 잘못 찍은 사진도 삭제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 사진을 봤을 때 ‘아 저 순간 내가 사진을 잘못 찍었구나, 카메라 셔터를 잘못 눌렀었구나’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니  조금은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살아온,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이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기록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하다. 나의 인생에서는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이 나의 역사이기에, 사진이나 영상, 글로 기록하는 것이 꽤 중요하다고 여기는 편이다.
이렇게 저장하고 모은 사진들과 동영상이 나에게 도움이 될 때도 많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약 1.2TB에 소중한 추억들이 또 쌓이겠지.


인간의 기억력은 생각하는 것보다 좋지 않다.

장 어제 아침에 무얼 먹었는지 물어보면 한참을 생각하고 답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일 것이다. 고대하고 기대하던 여행도 만약 사진을 찍지 않고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면 1년만 지나도 그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들을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추억을 사랑하는 는 이런 상황상상만 해도 슬퍼진다. 나조차도 몇 년 지난 사진들을 보며 ‘내가 여기에 갔었다고?’ ’ 여기 되게 예뻤었네?’하며 놀라고는 하니까.


당장 내가 지금 숨 쉬는 이 순간 자체도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SNS가 지금 현재로서는 인스타그램이다. 딱히 게시물을 올리지 않아도 24시간 뒤면 없어지는 스토리가 있다. 팔로워들은 24시간 뒤면 내 스토리를 볼 수 없지만 내 보관함에는 스토리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마치 쉽게 기록할 수 있는 일기 같은 것이다.


‘나 사진작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혼자만의 착각이

들 정도로 잘 찍힌 사진들은 따로 게시물에 올리면 그 순간을 추억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아까 서술했 내 클라우드에는 229,214장의 사진이 있다.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순간의 사진을 찾기에는 따로 폴더를 만들지 않는 이상 찾기가 힘들다. 이럴 때 나는 인스타그램을 들어간다.


인생에서 잊지 않고 싶은 순간, 행복했던 순간들은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기록해 놓기에 쉽게 찾을 수가 있다. 그리고 지인들이 볼 수도 있기에 잘 나온 사진들을 골라 올린다. 그 게시물을 통해 그 순간을 온전히 추억할 수 있으며 조금은 더 미화된 기억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이 우울해지거나 갑자기 인생에 현타가 올 때,

그냥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그럴 때 나는 인스타그램을 들어간다.

그리고 찬찬히 내 추억들을 곱씹는다.


'나에게는 이렇게 많은 추억이 있고

나와 함께한 소중한 사람들이 있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을 내가 먹었구나!'


깨달으면 갑자기 무언가 내 속에 단단함이 생긴다.

추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요즘 SNS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은데 그 부정적 시선의 중심에는 SNS가 타인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근데 사실 타인은 나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다. 이것도 내가 30여 년을 살면서 크게 느낀 것이다.


본인 살기도 바쁜데 남의 인생까지 신경 쓰기엔 세상이 그리 여유 있지 않다. 물론 남의 인생을 들먹이고 평가하는 게 취미인 사람들이 몇몇 있긴 하지만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아쉽게도 딱히 남의 인생에 관심이 크게 없다. 인스타그램만 하더라도 게시물의 사진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거나, 글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냥 아이디만 보고 '하트(좋아요)'를 누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지만 다른 경우, 앞서 말한 남의 인생 평가하는 게 취미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 주는 걸 주목적으로 SNS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조금은 안타깝지만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과시하는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경우. 그 과정을 통해 남에게 관심을 받고, 그게 본인의 행복으로 돌아간다면 딱히 타인이 뭐라고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본인의 행복을 찾기 위함이라면 그게 범죄가 아닌 이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질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무조건 틀렸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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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에게는, MBTI로 말하자면 I(내향형)인 사람에게는 SNS의 또 다른 순기능이 있다.

평소에 개인적으로 직접 연락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지인들이 있다. 그럴 때에는 스토리에 답장을 한다던지, 재밌는 영상을 보낸다던지,

'하트(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서 직접 연락하는 것보다는 적은 에너지로 인간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또 서로가 올리는 게시물과 스토리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SNS의 장점에 대해서만 얘기했지만 물론 단점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SNS의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서 나는 SNS가 활발한 이 시대에 살고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추억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

공감은 나를 어둠 속에서 꺼내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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