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히 Aug 02. 2024

퇴근하고 싶다.

흐르는 시간 속


“아 날씨 좋다."


끝없이 펼쳐진 단풍나무들이 묘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언덕을 내 최애(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와 함께 발을 맞춰 걷고 있었다. 가을 내음이 가득했고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지저귀는 새들이 우리를 질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최애와 서로 마주 보며 웃을 타이밍이었다.


제 막 눈을 마주치려고 할 때 즈음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칼날처럼 내 귀에 박힌다. 매일 아침 듣는 알람이다.


필이면 이 타이밍에?


꿈을 다시 곱씹을 새없다. 일어나야 한다 오늘도. 
먹여 살려야 할 내가 있기에 일어나야 한다. 눈을 뜬다.

아니, 아직 눈을 뜨지는 않았으나
아주 평화로웠던, 말 그대로 꿈만 같았던 꿈 속에서

지옥 같은 현실로 돌아온 것을 자각하며 괴로워하는 중이다.


오른쪽 목과 어깨 사이가 뻐근하다. 어젯밤 늦게 잠이 들어 몇 시간 자지도 못했는데 자세까지 엉망이었나 보다.

눈이 다시 감겨온다. 안 된다.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다시 잠이 들었을 때의 상황을 잠깐 상상해 본다. 회사에서 빗발치는 전화들, 직장 상사의 잔소리,

밀린 업무들… '이러다가 잘리는 거 아니야? 

다음 달 카드값은 어쩌지!' 눈이 번 뜨인다.


새벽에 아파서 응급실 왔다고 할까?

출근하는 중에 사고가 났다고 할까?


알람을 끄고 눈을 뜨는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더 이상 지체가 되었다간 지각이다.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길 원하는 몸을 아주 간신히 일으켜 나지막이 뱉는 한마디.


 "살기 싫다."


매일 이렇게 정신 나갈 것 같은 아침을 마주해야 한다면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될까. 욕실 거울에 비친 나를 마주하게 된다. 삶에 질려버린 표정이다.

 1시간만이라도 더 자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다.

어쨌든 오늘도 그렇게 출근 준비를 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씻고 누워서 자야지.’
매일 아침에 하는 다짐이다. 회사로 이동하는 중에도 비몽사몽이다. 정신은 아직 이불속에 있는데 육체만 억지로 끌고 나온 느낌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표정은 비슷하다. 웃고 있지도 인상을 쓰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평온해 보이지도 않는다. 참 신기하다. 나도 저런 표정일까? 한번 입꼬리를 양쪽으로 올려 미소를 지어본다.

딱히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저 사람들도 나처럼 출근하기 싫겠지?’
‘아닌가? 나만 이렇게 출근이 힘든 건가?’


아직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이지만 퇴근하고 싶다.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출근인 거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72번쯤 할 즈음 회사가 눈앞에 보인다. 지금부터는 비몽사몽이면 안 된다. 어쨌든 출근을 했기에, 내가 맡은 업무들을 해야 하고 적어도 월급을 받는 만큼은 일을 해내야 한다. 커피를 한 잔 수혈하고, 해야 하는 업무들을 하나하나 해나간다.


저번주는 정말 지옥 같았다. 당장 해야 하는 업무들은 쌓여 있는데, 그 사실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듯이 계속 추가되는 새로운 업무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해내야지. 그렇게 버텨내야지. 혼란스러웠던 한 주를 보내고 나니 이번 주는 나름 평화롭게 느껴진다. 오늘 아침 나를 정신 나가게 할 것 같았던 생각들은 연기처럼 서서히 사라진다. 그러다 맛있는 간식이라도 먹으면 기분이 조금 좋아지기도 한다. 만약 오늘 아프다는 핑계를 만들어 연차라도 썼다면 연차가 아까웠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건 업무량에 상관없이 한결같다. 집에 가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도 오늘은 칼퇴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퇴근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막 떠오른다. 침대에 누워서 재밌는 영상도 보고 싶고, 치킨을 뜯으며 영화도 보고 싶고, 오늘 새로운 시즌이 열린 게임도 빨리 시작해야 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씻고 누워서 자야지’
매일 아침하는 다짐은 언제나 그렇듯 사라졌다고 느끼지도 못하게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하던 찰나에 마침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ㄴ오늘 퇴근하고 곱창 고?
ㄴ고고


아직 퇴근까지 몇 시간 남았지만 곱창 맛집을 찾아본다.

열심히 일 한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다. 저번주에 힘들게 일했으니 여유로울 수 있을 때

여유를 즐겨야 한다. 퇴근 10분 전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구와 수다를 떨집에 가면 새로운 시즌이 열린 게임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말 행복하다. 이미 퇴근 준비는 마쳤기에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를 빠져나온다.


-


친구를 만나 네이버 평점이 좋은 곱창집으로 향한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며 친구와 건배한다. 요즘 핫한 주제에 대해 얘기도 하고 추억을 곱씹기도 하고 개인적인 고민들도 털어놓는다. ‘인생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마치 인생 다 산 사람들처럼 서로를 위로한다.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아침에 ‘살기 싫다’는 말을 나지막이 내뱉은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곱창에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먹는 ‘나’만이 존재한다. 내일 또 출근해야 하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살기 싫을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 맛있는 곱창을 못 먹고 죽었다면

후회가 남았을 거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이 내가 정해놓은 기준을 완벽히 해내야지만 만족하는 성격이라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들은 날 가끔 힘들게 했었다. 내향적인 나는 그 어떤 일보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게 힘들었었는데 그런 내가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사회를 맡게 된 적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위해 내향적인 성격을 숨기고 외향적인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 사회를 맡게 된 큰 이유였다. 사실은 부끄러움도 많고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아무 말이나 막 뱉는 것이었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낯도 안 가리고 말을 잘하는 이미지로 남은 것이다.


대본 같은 경우는 정해져 있지만 그걸 어떻게 맛깔나게 살릴지, 또 완벽히 진행하고 싶은 욕심있어서 애드리브 같은 것중간중간 적절히 추가해 재미있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다. 소 걱정이 많은 터라 며칠 동안 행사 당일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돌리고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상황에 따라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밤마다 상상했다. 그렇게 행사 전날까지 며칠 동안은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행사 당일 아침이 되었고, 어느 때보다 더 출근을 하기가 싫었다. 행사가 끝난 후로 시간을 빠르게 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마이크를 들고 진행을 해야 한다는 자체가 믿기지도 않았다.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돌발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는데 왜인지 더 긴장이 되는 느낌이었다. 긴장이 되니 배까지 슬슬 아파왔다. 내가 긴장한 게 티가 많이 났는지 동기 한 명이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 이 행사도 어차피 끝날 시간이면 끝날테니 너무 긴장하지 마."


그 직전까지도 집으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는데 동기의 얘기를 들으니 스르륵 긴장이 풀렸다.


그렇다. 어쨌든 시간은 간다.


행사는 끝날 시간에 끝날 것이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쨌든 끝이 난다. 내가 대본의 한 문장을 까먹고 넘어간다고 해서 목숨을 잃게 되는 것도 아니고, 애드리브를 실패한다고 해서 행사를 망치는 것도 아니다. 정말 심각한 상황만 생기지 않는다면 시간은 르고 행사도 자연스레 진행되고 결국 끝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행사는 시작되었고 정말로 시간은 흘렀고 행사도 끝이 났다.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내가 상상한 돌발상황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돌발상황을 10가지 넘게 상상하고 대처 방법까지 고민했었으나 단 한 가지도 일어나지 않았내 기준에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행사 진행을 맡게 됐는지에 대해 후회하고

걱정만이 가득했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행사 진행을 잘했다는 칭찬을 받고 뿌듯해는 ‘나’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진행을 안 맡았으면 아쉽기까지 했을 것 같았다.



사랑니를 한번 생각해 보자.
사랑니를 뽑고 나면 금방 죽을 것만 같이 아프다. 턱이 마비될 것 같고 얼굴 전체가 얼얼하고 이러다가 기절해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야무지게 갈비를 뜯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니뿐만이 아닌 미칠 것 같이 아프던 상처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별도 그렇지 않은가. 당장 그 사람이 옆에 없으면 못 살 것 같고 어느 슬픈 노래같이 총 맞은 것처럼 마음이 뻥 뚫린 것 같던 이별도, 시간이 흐르고 뚫린 구멍을 조금씩 메워가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진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왜 그 자식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었지?’
이별의 이유조차 생각도 안 날 만큼 잊히기도 하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치유가 되지 않는 상처들이 있다. 수술 후, 병은 완치가 되었다고 해도 수술 자국이 남을 수 있고,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런 상처들은 완벽하게 잊히지는 않겠지만 아픈 상처 위에 지나온 시간들이 쌓이고 행복한 기억들이 스며든다.


가끔 따가울 수도 있지만 상처는 처음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무리 지금이 지옥 같고, 앞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어둠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정말이다. 혼자서 어두컴컴한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때에는 희망적인 메시지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거다.

 

그건 나 따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 내 인생이나 유명인의 인생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당신에게도 해당이 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발버둥 치며 잘 버티다 보면 희미하게라도 반짝거리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나를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꺼내줄 순간들이 올 것이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기까지는 힘들 수 있어도

반드시 살만해질 때가 온다. 

'살아서 다행이다.' 싶은 순간들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대청소를 하며 책장 정리를 시작하려 할 때 즈음이었다. 책장의 끄트머리에 무심히 꽂혀있는 붉은색의 공책이 눈에 띄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생각을 끄적이고는 했던 공책 같기는 한데 글을 적은 기억은 어렴풋이 나지만
정확히 어떤 시기였는지,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지 않았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공책을 꺼내 딱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아, 그때였구나.


30여 년을 살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들이 몇 번 있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글만 봐도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눈앞에 생생했으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마음이 아려왔다.


그 시절을 겪은 것도 나 자신이고 그 글을 적은 것도 나이기에 누가 명치를 때린 것 마냥 가슴이 아팠다.


/죽기를 기다리며 사는 것 같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며 살아갈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걸 참아가며, 하기 싫은 걸 매일 하지만 더 나아지는 게 없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그건 분명 지옥이다./
/세상을 제대로 보기가 무서워 난 일부러 안경을 쓰지 않았다. 더러워진 안경을 일부러 닦지 않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삶을 포기할 것만 같은 글이 가득한 공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힘정도였다. 나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날짜별로 적어놓은 글들을 순서대로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다 마지막 장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걸 본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어버렸다.


/내 삶은 다시 시작된다.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열심히 살 것이다. 파이팅!/


가시밭길을 걷던 그 시절의 나에게 갑자기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다행히도 살아갈 희망을 찾았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지금의 나도 있는 거겠지.



인간과 고통은 뗄 수 없는 운명이다.


인간은 모두 고통 속에 살며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건 불변의 법칙이다. 그렇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인생도 ‘출퇴근’과 같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퇴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제는 전부 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살다 보면 살만한 순간들이 문득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열심히 살면 좋겠지만 그냥 삶을 버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은 가고 세월은 흐른다. 붙잡고 싶어도 흐르는 게 시간이다. 희망을 놓지 않고 버티다 보면 반드시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 올 것이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고통도 어느 순간 잊혀 ‘그땐 정말 힘들었었지.’ 억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다 어느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려 들어갈 수 있다. 


그럼 또 아파하다 상처가 아물 즈음엔

아파하던 것도 잊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살면 된다.

이전 06화 추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