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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히 Aug 09. 2024

내 이름은 김삼순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도 같다.


“아세상에는 맛있는 게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너는 개똥도 맛있지?”

건 안 먹어봐서 모르겠는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맞선을 앞두고 다이어트

좀 하라 닦달하는 엄마와 삼순이의 대화이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방영 당시 시청률 5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파티시에’라는 직업의 열풍을 불게 했던 대단한 드라마이다.


방영 당시 내 나이는 11살. 11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부모님을 따라서 본방사수를 했던 기억이 있다. 


김삼순. 그녀는 누구인가?


3년 동안 만난 애인에게 크리스마스 당일날 이별통보를 받은 여자. 그것도 바람이 나서 말이다.

촌스러운 이름에 아주 커다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서른이 된 나이까지 결혼도 못하고 사랑에도 실패한 뚱뚱한 노처녀. 여기까지가 어린 나의 기억에 담긴 삼순이다.


클리셰가 가득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면들이 내 머릿속 깊은 곳에 나도 모르는 사이 콕콕 박지만 이제 막 10살을 넘긴 초등학교 4학년이었기에 드라마를 완전히 이해했다기보다는 삼순이의 코믹한 연기가 재미있어서 봤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OTT(VOD 서비스)가 발달되어 지나간 드라마/ 예능/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게 되었는데,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보다는 웃으며 볼 수 있는 시트콤이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는 나에게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제과/제빵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렇게 정주행을 시작했고 결국 이 드라마는

나의 인생드라마가 되어버렸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렴풋이 생각나는 장면들도 있고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싶은 장면들도 많았다. 삼순이와 비슷한 나이가 된 지금, 어린 시절의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가지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착한 사람,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졌던 11살의 나와는 달리 이제는 모든 등장인물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해 볼 수 있게 다.


위암을 선고받았지만 남자주인공에게 그 사실을 숨고 공부한다는 핑계로 외국으로 떠나버린 전 여자친구 '유희진'. 외국에서 치료를 받으며 3년 동안이나 연락 한통 없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후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 주인공의 애인 행세를 한다.


그런 ‘유희진’에게 흔들리는 남자 주인공 ‘현진헌’. 결국 삼자대면(삼순-진헌-희진)까지 하게 되고 ‘현진헌’이 밉지만 사랑에 솔직한 삼순이는 주저 없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가랑비 옷 젖듯 삼순이에게 점점 마음이 커지는 ‘현진헌'. 결국 진헌과 삼순이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부모님의 허락까지 받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 모든 서사에서 딱히 ‘악역’이라고 할만한 등장인물 없다는 게 내 인생 드라마가 된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는  전 여자친구 ‘유희진’과 삼순이와의 사랑을 반대했던 ‘현진헌’의 엄마 ‘나사장’ 등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인물들이 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삼순이의 나이와 비슷해진 지금은 모두가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 인물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저럴 수도 있겠구나.’

‘저 결심을 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김삼순'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프랑스 파리의  ‘르 꼬르동 블루’에 유학까지 다녀와 국내 유명 호텔 파티시에를 거쳐왔으며, 케이크 맛 하나로 유명 호텔 계열 레스토랑 사장의 마음을 사로잡아 끈질긴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까지 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여자다.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유쾌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그녀는 드라마 마지막 즈음에 ‘삼순이 케이크’라는 케이크 가게를 개업하기도 한다. 드라마 속 삼순이의 실력만 봤을 때 ‘삼순이 케이크’는 아마도 대박이 나서 지금쯤이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케이크 가게가 되어 있지 않을까?


삼순이는 내 기억에 남아있던 ‘사랑에 실패한 철없고 뚱뚱한 노처녀’가 아닌  ‘능력 있고 당당한 매력적인 여자’였던 것이다. 이 드라마가 인기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는 삼순이가 되고 싶은 여자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다.


그것이 단지 여느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재벌 2세 ‘현진헌’의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랑 앞에서도 재는 것 없이 솔직한, 언제 당차고 유쾌한 여자가 되고 싶은 바람이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봤던 것들을 지금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참 재미있도 하다.


'해리포터 시리즈’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순수한 생각으로만 봤던 10대 지나


'해리는 얼마나 부모님이 그리울까.’
‘스네이프는 해리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말포이 가문이 악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생각하게 되는 30대 성장한 것이다.


-


내가 스무 살 때 적었던 짧은 글이 있다.


/밤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저씨들을 보면 마냥 무서웠었다. 귀신을 정말로 무서워했던 내가 귀신보다 술 취한 아저씨들이 더 무섭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밤길에 앞에 비틀거리는 아저씨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길을 돌아가고는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저 아저씨는 오늘 어떤 고된 일들이 있었을까? 어떤 고민을 술과 함께 넘겼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하는 것이다. 세상의 어른들을 점점 이해하게 되는 것이 나도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같다./


이 글을 적었을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다양한 입장들을 이해해 나가며 성장하는 중이다.

타인이 겪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나' 대입해 생각하게 되면서 공감 가는 일들이 많아지고, 타인의 슬픔을' 나'의 슬픔처럼 느끼게 되는 경우까지 생다.

이렇게 경험이 쌓이며 점차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인생을 배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초콜릿 상자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어요. 제가 무엇을 잡느냐에 따라서 많은 게 달라지거든요? 어릴 때는 겁도 없이 아무거나 쑥쑥 집어먹었는데 이젠 생각도 많이 하고 주저주저하면서 고르겠죠. 어떤 건 쓴 럼주가 들어있다는 걸 이젠 알거든요.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가진 초콜릿상자에 더 이상 럼주가 든 게 없으면 좋겠다. 30년 동안 다 먹어치웠다. 그거예요.” 


쓰디쓴 럼주가 들어있는 초콜릿도

어차피 내가 먹어야 할 상자 속의 초콜릿이기에,

쓴 럼주가 들어있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점점 더 인생을 배워나가며

삼순이처럼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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