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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히 Jul 19. 2024

엄마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 어린 시절, 엄마의 앳된 얼굴이다.

“연히야, 엄마가 없을 때는 언니가 엄마인 거야.”

20여 년 전 내게 버릇처럼 말하던 엄마의 말이다.


문장을 읊조리는 엄마의 표정이 어딘가 슬퍼 보였다.

덩달아 나도 슬퍼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꿈속의 어린 나는 걱정이 된다.

‘진짜로 엄마가 사라지면 언니가 엄마 역할을 해줄까?’

엄마가 진짜로 날 떠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눈물을 한가득 머금고 꿈에서 깼다.

깨고 난 뒤에도 꿈속의 감정이 남아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주 가끔 이상한 꿈들을 꾸고는 하는데 항상 엄마가 나온다.

꿈속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을 하고 있기도,

잔뜩 화가 난 모습을 하고 있기도,

상냥하게 웃는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꿈을 꾸고 일어난 뒤의 감정은 거의 비슷하다.

슬프고 먹먹하다.



중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던 때가 있었다. 이유를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빼고 급식을 먹으러 가고, 체육시간이 되면 나를 빼고 체육관을 갔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외톨이가 되어있었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그 무리 중 한 명이, 내가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마음에 안 든다며 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한 명은 무리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친구였다. 그 이후 나랑 다시 사이가 좋아졌을 때에는 또 다른 친구의 험담을 하고 다녔다.


“쟤는 너무 말이 많지 않아? 전부터 생각했는데 정말 별로야. 쟤랑 놀지 말자. 이건 우리끼리만 먹자.”


그건 단지 그 친구의 취미 같은 거였다.

한 명씩 돌아가며 따돌리는 것이 그 시절 그 친구에겐 재미였던 것이다. 나에 대해서도 저런 식으로 말하고 다녔을 걸 생각하니 정말 소름이 끼쳤다. 마치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죽을죄를 지은 사람인 것 마냥  치를 떠는 그 찡그린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친구에게는 취미였으나 그 취미에 놀아난 나는 그때가

내 인생에서 손에 꼽히는 최악이라고 불릴 만큼 힘든 시기였다.


사실 친구라고 부르기도 싫었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학교 생활을 하려면, 급식을 혼자 먹기 싫으면, 수학여행 가서 외톨이가 되기 싫으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친구랑은 사이가 좋았어야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 다니면 되지 않나?’ 싶은데 그때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와 친구가 인생의 전부다. 학교와 친구가 전부인 중학생에게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진다는 것은 내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다닌 중학교의 경우는 남녀공학이기는 했지만 남녀비율이 4:1 정도였다. 여자의 비율이 아주 적었기에 여자 무리에서 왕따라도 당하면 이도저도 갈 곳이 없는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등교를 하고 점심을 굶기도 하며 혼자서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엄마한테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언제 얘기를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까.’

‘그냥 얘기하지 말까.’


정말 오랜 고민 끝에 친구들과의 얘기를 엄마한테 털어놓았다. 그 당시 한적한 주택가 벽돌로 된 에서 살았었는데, 부엌의 작은 식탁에 앉아 얘기를 했던 저녁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중간에 눈물을 터뜨렸고 엄마는 나를  안아주셨다. 그때는 모른 척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바다처럼 깊은 엄마의 눈동자에도 파도가 일렁이듯

눈물이 일렁였다는 걸.


안 그래도 내성적인 딸의 성격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엄마였다. 그런 딸이 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겨 혼자 끙끙 앓다가 우는 모습을 보고 있는 그 순간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조차 안 간다. 담임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시 친구들과 관계가 좋아진 이후, 지금까지도 딱히 인간관계에 문제없이 잘 살고 있지만
엄마가  이후로 걱정을 많이 었다는 걸 안다.


고등학교 때에는 친구들과 장난으로 주고받은 문자가 신경이 쓰였는지 (당시 나의 핸드폰 배터리 수명이 다해 엄마의 핸드폰으로 잠깐 친구와 문자를 했었는데 그걸 하신 .) 점심시간에 조용히 학교 앞에 왔다가 친구들과 팔짱 끼고 급식을 먹으러 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다시 집으로 돌아던 적도 있었다고 다.

이 사실도 내가 알게 되면 신경 쓸까 싶어 한참 뒤에 말씀해 주셨다.



엄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걱정한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한테 너는 어린아이야.

항상 걱정이 돼. 그러니깐 뭐든지 조심해야 해. 알겠지?”


서른이 다된 지금까지도 듣는 말이다.

그리고 나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가 나를 걱정하듯 나도 엄마를 걱정한다.


어린 시절 나에게 엄마는 말 그대로 '슈퍼우먼'이었다.

뭐든지 잘 해내고, 뭐든지 척척 해결해 주는.

“엄마~" 이 두 글자면 마법처럼 모든 게 뚝딱

이루어져 있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엄마니까.


그때 엄마의 나이가 코 앞에 다가왔다.

나를 낳았던 나이는 이미 지났다.

이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슈퍼우먼'처럼 강한 엄마였지만

사실은 엄마도 무언가가 두려웠을 거고, 힘들었을 거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이기에 참고 견뎌냈을 것이다. 여느 20대 청춘들처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았었을 테지만 엄마이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던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20여 년 전 웃픈 일화가 있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즈음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불량식품을 사 먹으며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점점 다가왔다. 그러더니 날 보고 활짝 웃으며

“연히야 안녕~ 마트 갔다 올게~” 하면서 지나가는 것이다.


엄마였다.


어린 나의 눈에는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엄마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고, 친구가 그 순간 “너희 엄마야?” 물어보는데 아니라고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무 낯선 엄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니라고 대답한 거다.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아니라고 대답한 나에게 너무나도 죄책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엄마를 엄마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엄마가 장 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솔직하게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했다. 엄마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럴 수 있다고 했지만 그 뒤로 엄마의 양갈래 머리는 볼 수 없었다.


 당시 엄마는 30대 중반이었는데 그 나이가 코 앞인 지금의 나도 가끔 양갈래를 하고 싶다. 놀이공원이라도 가는 날에는 '오늘은 한번 도전해 볼까?' 하다가도 꾹 참고는 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엄마나 딸이나 똑같은가 보다.


'서른의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30대의 엄마는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과거로 갈 수 있다그때의 엄마를 만나보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 떨고 싶다. 

머리를 서로 갈래로 어주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

TV보다 보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눈물을 훔치는 연예인들을 보 다 눈물 연기가

아닐까 싶었었다. ‘부모님’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며 거의 통곡을 하는 연예인도 있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살아계신대도 말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갔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모님’라는 단어 들으면 나의 눈에는 눈물이 차오른다. 김진호의 '가족사진',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 같은 노래라도 들으려면 휴지부터 준비해야 다.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집에 오면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 큰 축복이었다. 학창 시절에 고민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엄마가 있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듣기 싫었던 잔소리도 다 애정이 깃든 말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엄마 같은 엄마는 내가 절대로 해낼 수 없을 것 같기에

다음 생에 내 딸로 태어나라는 말은 못 하겠다. 차라리 내가 더 좋은 딸이 되겠다고 하는  낫겠다.


엄마는 친구인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었고,

조건 없이 나에게 사랑을 주 동시에 사랑을 누는 방법을 가르쳐준 스승이었고, 여전히 나에게는 슈퍼우먼 같은 존재이다.  


가끔 “엄마는 어떻게 렇게 할 수 있는 거야?” 물으면

“엄마니까 할 수 있는 거야. 너도 엄마가 되면 다 할 수 있어”라고 하신다.


나도 만약 엄마가 된다면 정말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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