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을 안고 제일 먼저 부동산을 알아본다.내가 상상해 오던 기준에 적당히 적합한 곳을 찾았다.더 이상 지체 되어서는 안 된다.바로 부동산 계약을 해버린다.
계약이라는 것 자체가 인생에서 처음이라 무섭기도 했지만 설렘이 더 크다.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했고,다양한 서류들이 필요했으며, 여러 관공서에 들락날락해야 했다.하지만 내 꿈을 위해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든 서류를 제출한 후 허가 승인을 받고 사업자 등록증도 발급받는다.
이제 정말 실감이 난다!
자금이 많지 않았던 터라 최소한으로 인테리어를 한다.매장에서 판매할 상품들과 가격을 정하고, 어떻게 상품을 진열할지, 가구는 어떤 식으로 배치를 할지, 홍보는 어떤 식으로 할지 부푼 마음으로 모든 걸 진행한다. 요즘은 플랫폼들이 잘 만들어져 있어 그 플랫폼에 맞게 사진만 잘 찍어 올리면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여러 곳에서 홍보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열심히 준비를 한다.
드디어 오픈하는 날.
꿈만 같다. 내가 사장이라니.
친구들, 친척들, 부모님의 지인분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개업을 축하해 주고 개업 화분도 많이 보내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내게 연락이 와 축하해 준다. 책임감이 더욱더 막중하게 다가왔지만 그건 당연하다. 나는 이제 사장이다.
20대에 창업한 것 자체를 대단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다. 뿌듯하다.내가 원하던 꿈을 이룬 것이다.
내가 만든 것을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다.
맛있어서 또 사러 왔다며 재방문하는 손님들도 생긴다.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수익은 안중에도 없다.
찾아주는 손님들이 마냥 고맙고 감사하다.
지인들에게 선물하던 때처럼 서비스도 퍼준다.
그러다 점점 체계적으로 매출이나 고객 관리도 하게 된다.
단골들도 꽤 생기고 몸은 힘들지만 나름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행복하다.손님들께서 힘이 되는 말도 많이 해주시는데 그것들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된다.
가끔 진상 손님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있기 때문에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적당히 응대하고 넘어가면 된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오픈 후 1년이 지났을 즈음.
이제는 사장님이라는 소리가 그리 반갑지가 않다.
딱히 매출이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몸이 너무 힘들다.
1인 매장이라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하는데 빵을 굽고, 포장하고, 판매하고, 손님 응대까지 모두 다 하려니 정말 힘들다. 그렇다고 직원을 두기엔 턱없이 부족한 매출이다.
시즌에 따라 매출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완전히 예측불가다.매출이 높은 시즌이라 해도 나가는 비용이 많아져 온전히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은 그리 많지가 않다.
단체주문이라도 들어오면 새벽 4시에 출근을 해야 하고 퇴근은 자정이 넘어서야 한다.그러다 보니 이제는 단체주문도 반갑지가 않다.1인 매장이라 내가 없으면 매장이 돌아가지를 못한다.아파도 출근해야 하고특별한 날에도 출근해야 한다.일주일에 한 번 휴무인 날마저도
매장에 나가 청소를 하고 다음날 오픈 준비를 해야 한다.
쉬는 날에도 끊임없이 홍보를 위해 고민해야 하며,손님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답을 해야 한다.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모든 걸 손에서 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배가 불렀다고 생각하기에는 순수익도 많지 않기에 그것도 아니다.그냥 쉬고 싶다.
직원을 둔다고 해도 직원 채용부터 관리까지
모든 게 자신이 없다.내가 정말 사업을 할 그릇이 되는가에 대해서 매일 밤 고민한다.밤이 두렵다. 잠은 안 오고 생각만 많아지는데 이렇다 할 해결방안이 없으며몇 시간 뒤 또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의 몸을 압박한다.
뭐가 문제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너무 섣불리 사업을 시작한 걸까.
나 자신이 한심하다.
그렇게 큰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부족한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인해 점점 망가지고 있다.
그렇게 좋아하던 제과/제빵이, 오븐 속의 부풀어 오르는 반죽의 모습만 봐도 행복했던 내가, 이제는 모든 게 재미가 없다.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빵을 굽는 걸 상상만 해도 설레던 나인데, 신메뉴 개발이라는 틀에 갇혀 모든 것이 일로만 느껴지고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는 두면 안 되는 걸까?
그런 말이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알람으로 설정해 두면 그 노래가 싫어진다는.그 말이 너무나 공감이 간다.
주변을 보면 열정 넘치는 사장님들이 많다. 그들은 정말로 그 일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다.시즌이 바뀔 때마다 신박한아이디어로 신메뉴 개발을 하고 매장 인테리어를 하며
손님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그 매장들에 비하면 내 매장은 너무 초라해 보이고,그들에 비하면 나는 너무 부족하다.먹는 걸 워낙 좋아하기에 새로운 카페나 맛집을 찾아가는 걸 즐겼었다.그러나 이제는 모든 가게들을내 매장과 비교하게 되어 카페나 맛집을 찾는 게 두려워질 정도였다. 벤치마킹(참고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나 사례를 정해 그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필요한 전략 또는 교훈을 찾아보려는 행위)을 해보려는 의지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점점 자신감은 하락하고 나의 부족함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그렇게 사업에 대한 열정은 식어가고,찾지 말아야 할 워라밸을 찾게 된다.제일 바쁘다는 연휴에도 매장 문을 닫는다거나,일찍 퇴근하고 싶은 날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마감을 일찍 한다.수익보다 내 몸이 편한 게 우선이 된다. 사업가로서의 자질이 바닥을 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임시로 정한 휴무일은 늘어가고, 손님들은 줄어간다.
손님이 적은 날이면 그날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당일생산/판매이기 때문에 마감할 때 남은 빵들은 더 이상 판매를 할 수가 없는데, 쓸어 담아야 할 정도로 많이 남는 날들이 늘어간다. 남은 빵들은 지인들에게 나눠 주거나, 내가 먹거나, 단골손님께 여쭤보고 드리고는 하는데
이게 마냥 좋지만은 않은 일인 것이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까지 오게 된 거다.
그렇게 짧지만 길었던
2년의 여정 끝에 폐업을 한다.
돈이 정말 많아 취미로 사업하는 것 아닌 이상,사업을 시작하면 사업이 안정되기까지 내가 그 사업 자체가 되어야 한다.그게 ‘기본값’이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어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이기에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제 막 시작한 사업가에게 퇴근이라는 건 없다. 사업을 시작한 이상 워라밸 같은 건 상상도 해서는 안된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단 요식업은 그렇다.내 몸을 갈아 넣어야 한다.그리고 그 사업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정신력도 아주 강해야 한다.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베이커리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왜 저런 식으로 매장을 운영하지? 내가 사장이라면 이렇게 할 텐데.’했던 생각들은
‘아,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어졌다.아이를 낳아 봐야지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장이 되어 봐야지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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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차오르는 꿈을 만들어 줬던 동네의 베이커리도 내가 매장을 오픈하고 2개월 후,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오픈 시기가 비슷해 응원을 주고받았던 매장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향하는 모습을 보며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특히 요식업의 경우, 소자본으로 시작해 점점 성장하여 프랜차이즈로 성공을 한다거나,여러 지역에 분점을낸다거나, 팝업스토어를 열 정도로 유명세를 얻었다면 그 브랜드의 대표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다.사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마찬가지다.그 사업에 본인의 모든 것을 갈아 넣은 사람이다.모든 것을 갈아 넣어도 쉽지 않은 게 사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한 사업가의 재산과 화려한 겉모습에만 관심 있을 뿐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는지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그들은 뼈가 갈릴 정도로 사업의 성공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