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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히 Jul 05. 2024

사업가가 대단해 보이는 이유는 정말 대단하기 때문이다1

첫 번째 이야기



“연히야, 너네 동네 베이커리에서 일하게 되었어. 놀러 와.”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나에게는 자주 연락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몇몇 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다들 바빠져 연락을 많이는 못하지만, 발전하는 세상 덕에 단체 채팅이라는 것이 생겨 채팅방에 가끔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일상 공유도 하면서 자주 연락이 가능해졌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오래간다는 이유가 이런 것일까. 같이 있으면 순수했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대학 동기들보다도 더 편한 느낌이 든다.


그중 한 명인 친구가 우리 동네에서 일을 하게 됐다니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머 정말? 이따가 저녁에 들를게.”


내 인생 큰 변환점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간 베이커리는 너무나 멋졌고,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가득했다.

높은 천에 은은한 주황빛 조명, 반짝거리는 쇼케이스 안의 화려한 케이크들은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든 귀여운 모양의 빵,

오징어 먹물과 에멘탈 치즈로 만든 빵,

양파와 감자가 가득 들어간 바게트 등 기존틀을 깨는 다양한 종류의 빵은 이미 내 눈을 거쳐 심장을 파고들었다. 빵과 케이크를 만드는 일이 너무나도 대단하고 멋있어 보였다. 사진도 여러 장 찍고 친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난 후 빵을 한가득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안의 뭔가 모를 거대한 불꽃같은 게 타올랐다.


"빵집을 차리고 싶어."


거대한 불꽃 그 아래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그 당시 동네 베이커리에서 친구와 수다 떨며 찍은.


'빵순이'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종종 듣는 말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이라면 전부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빵을 제일 사랑한다. 빵이나 디저트류는 먹는 것도 좋고 만드는 것도 좋다. 수능이 끝난 후에 쿠키를 구워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빼빼로데이/밸런타인데이 같은 기념일에는 초콜릿이나 빼빼로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만드는 과정도 물론 재미있지만 내가 하나하나 정성스레 만들고 예쁘게 포장한 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행복이었다. 그 자체로 행복이었지 직업으로 가질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던 것 같다. 근데 불현듯 생각이 솟구친 거다.


‘그 행복한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는 말이야?’


불꽃은 훨씬 더 활활 타올랐다.
집에 오븐이 없던 터라 밥솥이나 프라이팬을 이용해 베이킹을 하고는 했었는데 이제 그걸로는 부족하다. 나에게는 확실한 꿈이 생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컴퓨터를 켜 오븐을 알아봤다. 오븐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기술을 먼저 배워야 했는데 배우는 과정에 고가의 오븐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 적당히 가성비 좋은 오븐을 구매했다. 그날부터 나의 베이커리 창업을 향한 열정은 그 뒤로 2여 년간 타올랐다.



나는 디자인학과를 졸업했지만 전공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25살이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경력이 많이 쌓이고, 나름 디자인 분야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디자이너가 되기 전까지는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작업은 나에게 따분한 일이었다. 물론 비용을 지불하는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제일 우선으로 해야 하는 건 맞지만 내 아이디어를 80퍼센트 이상 반영해 작업했던 졸업 작품과 실무는 전혀 달랐다. 사실은 그게 당연한 거다.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과 동시에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프로젝트를 어떻게 신입 한 명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본인이 클라이언트가 되거나, 뭘 해도 사람들이 박수 쳐 줄 만큼 유명해지면 된다.

유명한 디자이너들도 분명히 그런 따분한 과정들을 고 견뎌 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던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그 작업들이 너무나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전공은 살리지 못했고, 앞날에 대해 갈피를 전혀 잡지 못했던 25살의 나. 디자이너 겸 사업가라는 꿈이 많던 학창 시절을 뒤로한 채 살아간다. ‘안정적인 공무원이 최고’라는 주변 어른들의 말에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나의 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성인이고 당장 먹여 살려야 할 내가 있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다.


디자이너까지는 모르겠지만 사업가라는 막연한 꿈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둔 채.


-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나의 관심사와는 전혀 관련 없는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나보다 10살 많은 상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저는 꿈이 없어요. 현재 하고 있는 일도 저한테 맞지 않는 것 같고, 불과 3년 전만 해도 꿈도 열정도 가득했었는데

지금은 제가 뭘 하고 싶은 지 모르겠어요.


그 당시 나에게는 정말 큰 고민이었다. 10대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꿈이 바뀌기는 했어도 없었던 적은 없었기에

꿈이 없는 내 모습은 너무 낯설었다.


꿈이 언제 갑자기 생길지 몰라.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때 네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지금은 일단 돈을 모아두는 게 어때? 무엇을 배우든 무엇을 시작하든 금전적으로는 힘들지 않도록 말이야.”


내 또래의 친구가 저런 말을 했다면 그냥 웃으며 넘겼을 수도 있겠지만, 10살이나 많은 상사의 말은 어쩐지 내게 확 와닿았다. 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배우는 것조차 힘들게 된다면 꿈이 없는 것보다절망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다 할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관심이 있는 분야도 아니었지만 돈을 모으기 위해

일을 하며 사는 중이었다. 


근데 정말로 갑자기 꿈이 생긴 것이다.

직장 상사와 나누었던 대화마저도 운명 같았다.



당장 창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은 아직 없었지만

배우고 싶은 기술을 배울 수는 있었다.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도 따고, 다양한 디저트류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해 맛에 대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베이킹'이라는 것이 날씨나 환경에 따라 완성도가 천차만별이기에 시행착오도 정

많았지만 내가 상상한 대로 구워질 때의 빵들이 사랑스러웠다. 매일 아침마다 웨이팅 줄이 골목 끝까지 늘어져 있는 베이커리에서 근무를 하며 매장 운영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창업 자금도 더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빨리 창업을 하고 싶었다.
한 가지에 꽂히면 뭐든 빨리빨리 진행해야 하는 성격인 나에게 2년이란 시간은 매우 긴 시간이었다.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면서도 '왜 저런 식으로 매장을 운영하지? 내가 사장이라면 이렇게 할 텐데.' '이렇게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하는데도 장사가 잘된단 말이야?' 같은 생각을 많이 했던 터라 내가 창업만 하면

저기보다 더 유명한 베이커리의 대표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더 늦추고 싶지 않았다.
아직 자금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소소하게 시작할 수는 있을 정도였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점점 성장해 나가면 된다.


사업 성장 과정이 눈앞에 막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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