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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히 Jun 28. 2024

인간 나이 서른이면

세상에서 의미 찾기



'인생이란 무엇일까.'
내가 30여 년간 살면서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스스로에게 하는 것인지 세상에 묻는 것인지 

종교는 없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신에게 묻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람은 왜 사는 걸까.' 

'어차피 언젠가는 죽잖아.'

'죽음이 당장 내일 닥칠지도 모르는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도대체 왜?


-


인간 나이 서른이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 정도의 애매한 나이인 것 같다.

오래 살았다고 하기에는

성인이 된 지 10여 년 밖에 되지 않은 나이,
짧게 살았다고 하기

남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많은 선택을

끝내버릴 수도 있는 나이.


미리 말하자면,

나는 수많은 선택을 했지만 인생의 방향은 여전히

정하지 못한 방황하는 서른이다.
그래도 30여 년을 살면서, 보고 듣고 먹고 느끼며

깨달은 것들이 적지는 않은 서른이랄까.

스무 살의 나와 현재의 나는 겉모습과 성격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여도 세상에 대한 마음가짐은 완전히 정반대가 되었다. 뭐가 맞고 틀렸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몇 년 뒤에 보면

틀릴 수도 있고, 지금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 보면 정말 중요한 것 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잘못된 건 아니라는 걸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거에 했던 생각들과 행동으로 인해

물 밀듯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너무 자책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순간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기에 ‘그때 내가 살던 속에서의 나의 생각은 이랬었구나.’ 하고 가뿐히 넘어가면 된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것들을 깨닫고 후회하며 살아가겠지만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많은 삶이길 바라며.



30 살았는는 왜 아직도 사는 게

어렵고 힘들까?


어떤 일을 10년 동안 하면 베테랑이 된다는 말이 있다.

30여 년을 살아왔지만 아직도 세상은 낯설고 이해 안 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한순간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 되기도 하고, 죽고 못 살 것 같던 절친과 한순간에 남남이 되기도 하며, 착한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한순간에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이해 안 가는 일들이 빈번한 세상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인간은 왜 태어나고 죽으며,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부정하며, 열심히 사는 게 전부라 생각하고

힘들게 사는 걸까.

그러다 마주치게 된 법륜스님의 말씀이 있다.


'인생에 의미를 찾지 마라.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 게 아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미 삶은 우리에게 주어졌고, 어떻게 살 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자꾸만 인생에 의미를 찾으려던 나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다. 살아가는 데 의미가 없다며 우울해하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했다.

이미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삶은 주어졌다.
그 삶에 딱히 이유나 의미 같은 것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태어난 거다.
이 세상에도 딱히 의미가 없다. 그냥 만들어진 거다.

세상 속에서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냐는 내 삶의 주체인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부모님 삶의 의미는 부모님께, 절친의 삶의 의미는 절친에게, 직장 동료의 삶의 의미는 직장 동료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열심히 살 지, 느슨하게 살 지, 멍청하게 살 지,

겸손하게 살 지, 건강하게 살 지, 나쁘게 살 지는

그 삶의 주체가 결정한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 죽음에도 딱히 의미는 없기에, 죽는 날까지 어떤 삶을 살다 갈지는 삶의 주체인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30여 년 동안 했던 나의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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