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앞에서 헛웃음이 났다

그것이 없을 때 하는 말

by 영주






목이 마른 것도 아니었다. 정수기에 온수 버튼을 눌렀다. 120밀리리터가 출수되는 시간은 기껏해야 15초쯤 될까. 무슨 생각이었는지 받쳐 두었던 컵을 빼 입에 갖다 댔다, 물이 여전히 나오고 있는데. 관성으로 하는 행동이었을까.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컵을 드는 일련의 과정. 기다렸다에서 뭔가 꼬여 버린 것이다. 성급한 마음이 정수기 앞에서 바닥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얼 되게 잘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홈런은 만무하고 어째 평타도 못 친 하루 같다. 아쉬움은 조바심이 되어 흔들고, 때때마다 나는 엎질러지고 쏟아져서는 흥건해졌다. 이르게 빼든 컵에는 물마저 적다. 마음의 밭을 갈면 딱딱해진 생활은 부서지고 뒤집어져,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보드라운 태도가 올라올까. 보슬보슬 싹 틔울 마음이 될까.


아, 재정비가 필요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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