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탈, 삶은 제자리 '원'이 아닌 커지는 '나선'

마음의 원점, 우리의 삶은 '프랙탈 fractal' 구조를 닮아있다

by 한약여신
그런 거라면 조금 낫지 않을까?
어쩌면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일지도 몰라.

영화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 中



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 혹은 월화수목금금금금금-

일상을 살아내며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


나른할만치 잔잔한 미장센 속 스르륵 완성되는 자연의 음식들. 체념과 안락한 고요의 심상이 물감 번지듯 반복되는 일상을 때로는 아등바등 버텨내던 내 삶에 스며들게 되는 순간들.


영화 속 간간히 등장하는 길고양이가 오래전 5년간 돌보던 나의 길고양이와 꼭 닮아서가 아니더라도, 이 작은 농부의 이야기는 일상의 무거운 잡념을 사라지게 하면서 동시에 묵직한 상념에 잠기게도 했다.


뭔가에 실패해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비슷한 일로 실패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시작하는 주인공 작은 농부의 내레이션.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하기도 했고,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것뿐은 아닐 거야.

그렇다면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는 생각을 했어.

맞은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였겠지만
분명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가기도 했을 거야.

그런 거라면 조금 낫지 않을까?

어쩌면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일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맴돌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위나 아래로 뻗어 나가기도 하고, 옆으로도....

내가 그리는 원도 점차 크게 부풀고, 나선은 분명 커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


영화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 中



정말 낮잠 자듯 영화를 보다 심장을 관통하는 대사를 느꼈다.


어느 사랑이 끝날 무렵 중심을 잃고 휘청이기 시작한 나는 다신 일어날 수 없는 사람처럼 기고 있었는데, 그때 나의 상담사는 사랑을 잃고 옥상에서 투신하고도 살아남아 또다시 사랑을 하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와 '나선'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네 삶이 그리고 이 사랑이 오랜 시간을 걸어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선형 계단을 걸어온 것이라, 나도 모르는 새 올라가고 있었노라고. 그걸 이 순간의 나만 모르고 있을 뿐.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끝나버린 사랑이라도 너는 아프게도 자라나고 있는 거라고.


그때 시간이 자정을 넘기고 있었는데 문득 알 수 없는 용기 같은 게 생기는 것 같기도 했고, 마음에 미세하게 따가운 볕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데자뷔 deja vu'가 스크린을 타고 펼쳐지는 것만 같달까.




지금은 '나선'이라 함은 약국근무도 떠오르고, 어떨 때는 이건 도저히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 같은 복약지도나 약물선정도 어느 순간에는 '어? 이게 되네' 싶기도 하는 점이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가도 돌아보면 어느새 한 첫 만남까지 한 층 올라와 있는 작은 기쁨이 느껴지는 성장인 것 같다.



또한 사랑의 역사 속에서도 그렇게 그 시절, 너무 아파 사랑이 아니었음을 가늠케 한 사랑에 대한 마음들이 지금 나의 곁에 함께인 사람을 더 귀히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그 사랑 = 나선이라는 기적의 추세선을 오르고 또 오르게 하였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결국 '원점'이라는 것도, 나는 한때 아래의 시와 같이 생각했었다.


이제는 정말
괜찮아졌다고 생각할 때마다

너는 그걸
알아채기라도 한 사람처럼
뜬금없이 나를 찾아와서는
내 마음을 다시 휘젓고 가지.

그때마다 아프게도 깨닫는다.

괜찮아지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하고.


[새벽세시- '원점']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로 인해 찾아본 '원점'의 사전적 의미를 알게 되었다.



원점 (原點)

1. 시작이 되는 출발점. 또는 근본이 되는 본래의 점.
2. 길이 따위를 잴 때에 기준이 되는 점.
3. 좌표를 정할 때에 기준이 되는 점. 수직선 위의 0에 대응하는 점이며 평면이나 공간에서 좌표축들의 교점이다.

[표준국어대사전]



그것이 결코 나태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과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기하학에서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프랙탈 fractal'이라고 하는데,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자기 유사성 개념을 기하학적으로 푼 구조를 말하는 이 프랙털은,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묘한 전체 구조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자기 유사성 self-similarity’‘순환성 recursiveness’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삶이 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 그렇게 나 자신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복제하는 가운데, 나선을 이루고 한 번씩 원점으로 돌아올 때마다 더 큰 원을 그려나가는 것과 그 결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지킨다고(자존) 믿는 믿음. 혹은 아늑한 자애가 아닐까.


그래서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쓴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그리고 지금 당신도 저 영화가 주는 낮잠 같기도 하고, 그 어느 날 얼굴도 알지 못하는 상담가에게 위로받은 내담자가 되기도 하는 그런 느낌같이 들숨과 날숨 사이에 스며들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손톱이 자라듯이 오늘도 내가, 그리고 네가 올랐을 나선형 계단을 생각하며 나아가길, 그리고 나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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