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존감이 하늘과 땅 양극단을 오가곤 했다. 태생적인 건지 자라면서 부모님의 양육 태도가 영향을 미친 건지 알기는 어렵다. 그 양극단의 자존감이 때로는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이칠 치곤 했고, 때로는 하늘을 향해 치솟기도 했다.
그날도 그랬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전까지 나는 스스로의 똑똑함에 취해 자존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었고,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자 나는 스스로의 아둔함으로 인해 자존감은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쳐버렸다.
지금은 완전히 사기를 당함으로써 받았던 금전적 피해. 정신적 고통 이 모든 것으로부터 완벽히 벗어나 있다. 하지만 그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은 내 몸과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각인되어 있다. 그 이야기의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2014년 어느 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시절. 우리 부부는 처음 만났다. 나는 그녀가 좋았다. 온갖 표현을 덧붙여 말할 수도 있지만. 줄여서 말하면. 그녀는 예뻤다. 커다란 눈망울과 오뚝한 콧날은 한눈에 호감을 가져다줄만한 시원시원한 인상이었고, 나는 찰나의 순간에 영원을 보았다.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은 특별했다. 수많은 동시대인들에게 파묻혀 증발해버린 내 아이덴티티가 그녀와 함께 있으면 살아났다. 그러한 특별한 순간의 연속은 내게 달콤함이 영원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2015년 겨울. 결혼을 했다. 일생동안 일상을 공유하게 될 사람을 만났고. 나는 행복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일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금전적인 문제. 곧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욕망은 내 안에 깊숙한 곳에서부터 꿈틀대었다.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퇴직 후 연금에 의존해서 생활하시는. 그리고 집 1채만이 남아있는 전형적인 중산층의 삶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 부자는 없었고 현실적으로 손쉽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절약이 전부였다. 절약은 정직했다. 아끼면 아끼는 만큼 지출이 줄고, 지출이 줄어든 만큼 순자산은 늘어났다. 나는 그 눈에 찍히는 숫자를 사랑했다.
신혼 생활은 저렴한 전셋집에서 시작했다. 신혼은 좋았다. 신혼여행은 꿈같았고. 일상은 축복 같았다. 그 축복에 돈이 더해지면 행복할 거라는 확신.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절약. 이게 당시의 내 생각의 흐름이었다.
아꼈다. 남들이 보면. 특히 장모님이 보셨다면. 아이고 우리 딸 시집 잘 간 거 맞니?라고 생각하실게 틀림없다. 극단적으로 아꼈다. 옷은 당연히 사 입지 않았고, 겨울에는 난방비가 아까워 방 하나로 침대와 컴퓨터 등의 살림살이를 몰아넣었다. 당시 집은 34평이었는데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공간은 3평 남짓이었다.
절약을 하기 이전에 한 달 난방비가 15만 원가량 나왔는데 하루에 5천 원꼴로 지출되는 셈이었고. 거꾸로 난방을 틀지 않으면 하루 5천 원을 아낄 수 있다는 귀여운 발상을 실행에 옮기며 살았다. 3평 남짓한 방의 밖은 그야말로 시베리아 같았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놀러 와서 오래간만에 거실도 난방을 틀었는데 거실이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쩜 그렇게 어색했는지 모르겠다.
그날도 좁은 방에 와이프와 둘이 한 방에 있었다. 평소에는 아늑하게 느껴지던 방이 그날은 달랐다. 좁은 방에 갇혀 있는 내 몸뚱어리가 좁은 방과 함께 침잠할 것 같다는 공포감이 들었다. 그 공포감으로부터 탈출해야 했다. 무엇이라도 해서 돈을 더 벌어야 했다. 이런 조급함은 나를 합리적 사고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사기를 당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사고의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