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it til you become it"
Ted에 강연자로 나온 에이미 커디가 원더우먼 자세의 효용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자세히 그 뜻을 살펴보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세는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달리기에서 1등을 한 선수가 팔을 길게 뻗어 세레머니를 하는 행동이나 한 무리의 대장원숭이가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행동의 맥락은 같다.
'내 힘이 가장 세고, 나는 자신이 있어. 그걸 내 행동을 크게 해서 내 자신감을 보여줄께'
그렇다면 거꾸로 행동을 크게 함으로서 자신감을 불러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YES다.
자신이 초라하고 자존감이 낮다고 하더라도 몸을 움츠리거나 목을 손으로 감싸쥐는 등의 행위보다 팔을 벌리거나 어깨를 쫙펴고 고개를 빳빳하게 드는 등의 자신감이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정말로 자신감이 생긴다는 건데. 이걸 에이미 커디는 데이터로 입증해 보였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정말로 그렇게 될 떄까지 계속하라는 것이다. 내가 자신감이 없는 상태라면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자세를 펴서 그 자신감이 충분히 내면화되고 나를 새롭게 규정지을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자세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적용하려고 시도했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먼저 그것이 되어야 한다.' 선문답같은 말이지만 성공을 향한 진리의 정수이기도 하다.
육아를 잘 하기 위해서는 좋은 아빠가.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좋은 선생님이,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연습하고 노력함으로서 어떤 존재가 되는 게 당연하고 직관적이지만, 어떤 존재가 되었다고 스스로 여김으로서 그 존재가 실제로 되어 가는 것. 그게 더 효과적이고 속도감있는 일이다.
나는 부자가 아닐 때에도 부자처럼 행동했다.
부자처럼 행동했다는 건. 소비의 기준에서 더 지출이 많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부자의 사고. 부자의 지식. 부자의 태도를 갖고 있는 것 처럼 행동했다는 뜻이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 결정을 한 번의 운이 아닌 누구에게나도 설명하고 일반화할 수 있는 법칙을 찾아 마치 부자였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이 순간에 할 수 있었던 것 처럼 움직이고 싶었다.
예를 들면. 아파트를 사서 그 가격이 오르면 기뻐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그 아파트가 오를 것을 예측했는지를 기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돈의 크기에 희비하지 않고, 돈을 버는 능력을 갖추었는가에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이미 부자라고 생각하며 생활했다. 그렇게 1년, 2년 생활하게 되면서 순자산은 급속도로 늘었다.
현실적으로 직장인이 사업소득을 만들지 않고서 급속도로 자산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은 부동산이 거의 유일하다. 그 부동산에 대한. 요즘은 함부로 입밖에도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기술하기에 앞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아버지는 자주"운때가 좋으면 말이야. 돼지도 태풍에 날아. 지금 실력이 좋아서 인지. 운이 좋아서 인지 구분을 할 수 있어야하고. 항상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쨌던 아버지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돼지였고, 하늘을 날았다. 그게 태풍때문인 것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하지만 반대로 난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태풍덕분에 날아오른 게 어디냐고. 그냥 주저 앉아있었으면 돼지로 끝날 것을 잠깐이라도 하늘 구경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게 어디냐고.
나는 집이 필요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는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세차익을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순서는 분명했다. 주거의 안정성.
2018년으로 넘어가던 당시에 20년 차가 넘은 소형아파트에서 세 살 먹은 첫째와 갓난 아이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그 집은 여러 모로 열악했다. 아파트가 낡아 아이를 씻기러 목욕탕에 들어가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겨오곤 했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윽. 이상한 냄새나. 우웩 냄새"라고 말했지만. 집 상태가 안좋아 목욕마저 쫒기듯 시켜야 하는 나는 아빠로서 마음이 불편했다.
집은 좁고 좁아 거실에 장난감 한 번 확 쏟으면 옴짝달싹 할 수 없게 좁았고. 컴퓨터를 따로 놓을 공간이 없어 옷이 치렁치렁 걸려있는 행거 밑에서 컴퓨터를 하던 시절이었다. 가족의 편의도 중요했고. 내 자존감도 중요했다. 아이 키우기 불편한 환경속에서 참으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에서 연민의 정 따위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당당한 내 자아상으로 바꾸고 싶었다.
주거 환경이 썩 좋지 않은 곳에 살아본 평범한 시민으로서 주거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2가지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본인은 정작 좋은 곳에 살고 있거나, 애써 불편함을 외면하거나.
와이프와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도, 아이를 낳고 나서도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물론 산후조리원에서는 안정을 취하고 난 후의 일이다. 그렇게 긴 탐색의 시간과 짧은 망설임의 시간을 거친 끝에 예쁘게 지어지고 있는 집을 하나 샀다. 그 때의 떨림. 불확실함. 두려움. 기대감. 이런 혼재되어 있는 감정이 고스란히 우리 부부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집을 매수하면서 지출했던 비용은 내가 5년의 세월을 직장에서 보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는데 그렇게 큰 돈을 쓴 것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지는 않았다. 다만. 결과적으로 사기당한 것보다 더 큰 돈을, 별다른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집을 조금 늦게 산 것뿐인데 내 수중에서 누군가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이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충격이 꽤나 컸다.
사기를 당한 것도 힘들었는데. 사기를 당한 액수의 5배가량의 돈이 아무 잘못도 없이 내 수중에서 빠져나갔다. 아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게 아니었다. 자산 시장에 대한 얄팍하고 어설픈 이해였다. 더 나를 어쩔 줄 모르게 한 건 내가 잃어버린 건 돈이 아니라 5년 이라는 세월이었다는 점이었다. 직장 다니면서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을 몇 분만에 이체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게 아니라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가는 게 현실이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거꾸로 자산시장에 대해 이해하고 실행력이 있으면 잃어버린 돈을, 아니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난 블로그에 내가 알게 된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공유했다. 마치 이미 부자가 된 것 처럼 말이다.
내가 벌고 싶었던 것은 돈이자 시간이었고, 내가 키우고 싶었던 것은 자산이자 자존감이었다.
"Fake it til you becom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