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

by 보통사람

아버지가 이상했다.


집에 볼 일이 있었고 차가 막혀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철역으로 온 나를 아버지가 태우러 오셨다. 차에 탄 내게 아버지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안 추운데 한겨울 코트를 입고 왔어"


너무 살가웠다. 이런 말을 하는 아버지가 아닌데 어색하게 느껴졌다.


"애미는 직장 다닐만하데?" 이러저러해서 힘들데요 라는 나의 말에


"이런, 못된 놈들. 어쩌라는 거야 힘들겠네"


먼저 질문하고 공감할 줄 아는 대화의 기술이 어느새 아버지에게 스며들었다. 너무 다정했다. 좋기는 한데... 뭔가 서운했다. 예전 아버지의 모습이 안 보여서 서운했다. 나이가 드신 건가.. 아버지가 이상했다.





아버지는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55세에 퇴직했으니깐 벌써 8년. 거진 10년이지." "그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고 흘려보낸 게 후회된다. 조로(早老)라고 하나? 너무 퇴직이 빨랐고 너무 일찍 늙어버린 것 같아"


소머리국밥에 반주를 드시면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진심에 나는 약간 당황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에 와서 밖에 나가서 몸 쓰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돈이 매달 많이 나간다. 그래서 알다시피 연금도 조기 수령하고 있잖냐. 좀 더 도전해야 할 때 그냥 집에 있던 게 아쉽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


퇴직 이후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만 보고 계신 아버지의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도전하지 않고 흘려보낸 아버지의 8년이 짧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후회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리워하고 있었다.


"당신 자식 안 이뻐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만.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를 참 이뻐했어. 너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10년이고, 할머니 돌아가신 것도 곧 있으면 2년 되네. 가끔씩 생각이 나"


평소 아버지가 감정을 담아 당신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순진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의 감정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그날의 무엇이 아버지로부터 하여금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을까.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 신세를 좀 오래 지셨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작업하시다가 못에 찔린 후 서서히 몸이 굳기 시작하더니 의식을 잃으셨다. 파상풍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1년가량을 꼼짝도 못 한 채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어느 날부터 걷지 못하셨다. 거동을 어려워하시더니 조금씩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병원신세를 몇 년 지고 기력이 쇠약해지시던 어느 날, 돌아가셨다.


두 분의 병시중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 아버지는 사랑을 주었던 기억보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또 뭘 그리 감성적이신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아버지. 이것을 보는 내 모습에서 긴 시간 뒤에 나 역시 지금을 그리워할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아버지는 떠나간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아이들은 커가고 부모님은 늙어간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는 미래가 있다. 어떻게 성장할지 어떤 어른이 될지 궁금하다. 어른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는 현재 밖에 없다. 부모님의 10년 뒤가 지금보다 더 빛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들을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사랑할 시간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부모님의 시간도 찰나의 순간이었다.


젊은 시절의 나와 장성한 아들이 함께할 수 없다는 것만 아쉬움인 줄 알았는데. 젊은 시절의 부모님과 장성한 내가 함께 할 시간이 찰나였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얽매여 실패를 수습하며 살기엔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을 때에 하는 것. 그게 아버지와의 소주 한잔이던. 가족과의 산책이던. 공부하고 실천하는 투자던. 지금 뿐이다.



어는 덧 사기당했을 때에 나를 향해 스스로 내뱉던 자기파괴적인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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