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물체가 외부에서 그것의 운동 상태. 즉 운동의 방향이나 속력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 작용에 대해 저항하려고 하는 물체의 속성을 말하며. 보통 질량이 클수록 물체의 관성이 크다.
라고 관성에 대해 국어사전에 기술되어 있다.
인간의 관성에서 질량은 살아온 나이와 습관에 비유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성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여러 안전지대에 둘러싸여 관성이라는 뉴턴의 운동 법칙이 나에게 적용되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관성은 여러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를 붙잡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안전지대였다. 나를 따뜻학 감싸주고 있던 안전지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졌다. 도약하고 싶어 졌다.
먼저 실패로부터 결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를 사랑해야 했고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려면 사기라는 실패의 행위를, 실패가 아닌 성공을 위한 초석이었다는 프레임으로 바꾸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매달 200만 원씩 1년을 고스란히 모아야 사기당한 돈을 갚을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 통장에서 매달 빠져나가는 대출에 대한 이자도 비싼 수업료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장 성공적인 도약은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 사이의 감정을 날려버린 일이다. 그 무렵 나는 부모님에게 내 무능으로 인한 비난의 화살 일부를 돌리고 있었다. 당시의 내 상황은 투자. 어쩌면 생존 문제에 있어서 약간 꼬여있었다. 내가 살 집이 없었다.
원룸, 소형 아파트에 투자했지만. 이것들에게서 나오는 수입은 너무 미미했고, 내가 사지 않았던 좋은 집들은 한 없이 가격이 올라가고 있었다. 한 달에 몇 십만 원 손에 더 쥐는 일이 처음엔 흥분이었지만. 이게 틀렸음을 아는 데는 1년의 세월이 넘게 필요했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는 고작 20대임에도 분양권 투자로 몇 천만 원을 벌었다는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그런 이야기를 전해왔다.
'나는 뭘 한 거지? 가족을 작고 낡은 집에 모아서 살게 해 놓고..'
그 친구의 부모님은 주택에 대한 왕성한 투자 활동을 이어가던 분이었고. 동료는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겠다.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나는 그런 부모님이 없었어' '부모님으로부터 투자에 대한 감각을 배우지 못한 게 이렇게 날 만든 거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관성에서 벗어나야 했다.
내가 집을 사지 못한 것은 부모님 탓이 아니었다. 내 공부가 부족한 게 전부다. 그게 전부다. 나이 서른 살 먹도록 부모님을 탓하고 있으면 앞으로도 달라질 게 없었다. 내가 가격이 오르는 좋은 아파트를 사지 못한 것은 나의 주택시장에 대한 오해가 비롯된 탓이다. 인정하는 게 마음 편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게 분명했다.
나이 서른 넘게 먹은 어른 남자가 예순 가까운 부모님을 탓하는 꼴이라니.
매일 밤마다 공부를 했다. 2가지 종류에 대한 책이 책상에는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자기 계발서와 부동산 관련 도서.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더 명확하다. 부의 크기를 늘리는 일과 자존감의 크기를 키우는 일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둘은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순서를 떠나 밀접한 상관관계에 대해 어렴풋이 인지한 나는 매일 마음을 키우는 자기 계발서와 자산 시장에 대한 이해를 키워주는 재테크 관련 도서를 읽고 내면화했고, 그것을 일상에 적용했다.
나는 달라지고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였다. 아이에게 어제와 내일이 다른 삶을 보여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