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기 위한 연습

by 보통사람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남녀가 이런 류의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어른의 가면을 쓴 어린이가 어른인 척 살아가는 것 같아. 아직도 내가 어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거든"


"나는 반대야. 노인이 어른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아."


저 영화를 처음 보던 당시의 내 나이가 20대 초반이었고. 저 말을 듣던 당시의 나는 어린아이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인이라고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30대 중반인 나는 어디에 가까워졌을까?




독일의 작가 루이제 린저의 책 <생의 한가운데에서>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방황하는 주인공이 30대 중반이었고. 그 나이를 생의 한가운데라고 칭하는 순간. 30대가 되면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건가. 그렇게 상상하곤 했었다. 그럼 그 후의 나이는 중간을 지나버린 거구나. 가운데를 지나면 끝이 다가오는 건데 늙는 일만 남은 건가.


인생은 50이라고 노래를 불러대던 오다 노부나가의 말이 와 닿기도 했다. 나이 50이 되면 다 삶을 갈무리 지어야 하는 시점이구나. 그래도 노부나가는 전국 통일이라는 야망을 달성하려는 목전까지 갔는데. 나는 뭘 이룬 거지?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무는 시간에 갇혀있었다.


나는 어느새 나의 자아상을 어린아이가 아니라 노인에 가깝게 규정하고 있었다. 30대 중반에서 20대가 까마득하게 먼 과거로 생각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50이 그렇게 먼 미래로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정신적으로 늙어가고 있었다.




이걸 깨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를 사랑해야 했다. 나의 과오를 씻어내고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나의 가장 큰 과오는 아무래도 '사기에 당한 것'보다 '사기에 당함으로써 무능하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과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현실'이었다. 바로 법무법인에 연락했다. 그리고 사건을 맡겼다.


변호사와 상담하면서 계속 작아지려고, 숨고 싶은 내 도피의 욕구를 눌렀다.


"벌써 돈이 안 들어오기 시작한 지가 꽤 되었을 텐데. 왜 가만히 있었던 거죠?"라는 변호사의 질문에


"아.. 그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싶기도 했어요"라는 내 답변은 그 자체로 '나는 한심한 인간입니다. 변호사님'이라고 돌려 말하는 것 같았다.



통화하면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것 마저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이야기를 하는 순간 무기력하게 되는 내가 싫었다. 그만둘까.


그만둘까. 그만둘까. 어차피 날린 돈. 변호사 비용 몇 십만 원만 더 드는 것 아닌가. 다 때려치울까. 다 때려치울까.


하지만 이내 통화를 끊고 다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자기 계발서를 한 장씩 천천히 읽었다. 그랬다. 그만 두면 안 되는 일이었다.


더 이상 사기당한 것으로부터 휘둘리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되었다.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긴 순간. 나는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고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갉아먹던 부정적인 단어와 이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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