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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Jan 02. 2019

예수님의 첫 연설

황창연 신부님과 함께한 이스라엘 성지순례 04 시나고그 회당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 마태오 13장 54-58절 -



시나고그 회당


시나고그 회당 

성경에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설전이 오가는 치열한 토론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나자렛에 남아 있는 시나고그 회당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자신을 드러낸 곳이자 가르침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간 곳은 지금까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시나고그 회당이었다. 들어가 보니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천장은 아치형으로 굉장히 높았다. 아마 조금만 말해도 크게 들렸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곳에 서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교했을 것이다. 


성경에서 나오듯이 사람들은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성경에서도 우리 동네에 그저 그런 집안의 아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설교를 하니 황당했을 것이다. 이 녀석이 뭐 길래 우리를 가르치려 드는가? 그만큼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거나 선입견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 자체를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고향과 집안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상대방을 너무 잘 안다고 여겼기에 그 진가를 모르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지금 현재도 그러한 경향은 많이 볼 수 있다. 명문대에 나오거나 대기업에 다닌다고 하는 것과 알바를 하고 있거나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는 것과는 뒷배경만으로도 그 사람을 다르게 판단하게 된다. 특히 관계가 더 가까울 수 록 말이다. 모두가 극찬하는 의인은 사실은 청소 노동부에서 나올 수 있고, 아무리 높은 분이라도 횡령과 사기를 저지를 수 있다. 예수님조차 자신의 고향에서는 기적을 행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포기하셨던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 다른 곳에서 인정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고향의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마치 한국에서 인정 못 받던 사람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돌아오면 인식이 바뀌듯이 말이다. 예수님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없지만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 곳에서 연설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첫 연설 


기록에는 예수님이 12살에 처음으로 회당에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세에 공생활을 선포하는 곳도 이 곳 회당에서였다. 예수님의 첫 무대 데뷔는 어땠을까? 무척 떨렸을까? 그 전날 잠을 한 숨도 못 잤을까?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계속 반복 연습을 하셨을까? 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만 유독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오르면 약해졌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다. 14년에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150명 신입생 앞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생긴 적이 있다.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고 150명의 시선을 받자 준비했던 대본을 까먹어버렸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하얘졌다고 할까. 결국 횡설수설하다가 끝나버린 기억이 있다. 지금도 흑역사이다. 예수님은 작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 어떤 기분이었고 어떤 느낌인지는 성경에 있는 글로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예수님의 처음은 어땠을까? 이름 있는 집안의 자재도 아니며 좋은 학교를 나온 학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처음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을 귀담아 들었을까? 허공에 소리치는 느낌이었을까? 도를 아십니까?로 생각했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선과 무시를 받았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이겨내셨을까? 오히려 더 담대하고 우렁차게 열변하셨을까. 


첫 강연 이후 마이크를 잡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두려움은 노력과 반복에 반비례했다. 내가 얼마나 준비하고 반복 연습을 했냐에 따라 두려움이 사라졌다. 예수님도 처음에 힘들었을지 모른다. 인간의 몸으로 내려왔기에 남들보다 더 큰 노력과 반복연습을 했을 것이다. 노력과 연습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오로지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예수님의 이야기도 성경에 결과만 남았다. 하지만, 마이크를 잡고 두려움에 떨었던 내가 예수님의 입장으로 생각했을 때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시나고그 회당에서 기도를 드리면서 어린 예수님이 당차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보이지 않은 노력과 연습이 있었기에 지금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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