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즉흥 여행 - 후에 편
베트남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B형님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B형과 나는 충동적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했다. 꾸이 년과 후에를 최종 후보로 두고 고민하다가 후에로 최종 결정하게 되었다. 호치민에서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도 많았고 옛 베트남의 수도였던 후에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는 B형의 의견에 따르면서 후에를 난생처음 가보게 되었다. 출발 2일 전의 일이었다. 무이네도 그렇고 요즘은 충동적으로 여행을 가는 게 컨셉이 된 듯 하다.
후에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에 먼저 도착하였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오토바이를 빌려주고 있었고, 우리는 오토바이로 후에를 돌아보는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토바이를 빌리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추천해준 맛집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여행은 매우 순조로웠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오후 1-2시의 후에는 매우 더웠기 때문에 커피 한 잔 하며 잠시 쉬다가 오토바이 타고 후에를 돌아보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커피 한 잔 하며 쉬고 있는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우 강한 비가 세차게 내렸다.
동남아에서 우기에 비가 내리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는 당연한 일상이다. 하지만 모처럼 후에에 놀러 왔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려고 하는 그 순간에 비가 오는 하늘이 야속하기만 했다. 호치민에서 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을 때까지 멀쩡하던 하늘이 왜 오토바이 타고 나가려고 할 때 내리는 건지..
결국 포기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우기 시즌에는 비가 오래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짧고 굵게 내리는 것이 동남아 비의 특징이었다. 곧 그치겠지 하고 기다렸으나, 빗줄기가 조금 약해질 뿐 비는 4시가 넘어가서도 그칠 줄 몰랐다. 커피도 다 마셨고, 가져온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짧게 낮잠도 자보고 하였으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후에 여행 첫날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빈둥빈둥거리다가 끝날 것 같았다.
" 그냥 오토바이 타고 돌아보자."
B형은 우비를 주섬주섬 입더니 비가 오는 와중에도 오토바이를 몰고 나가려고 했다. 이대로 집에만 있기에는 아쉽다는 것이 형님의 이유였다. 비를 맞으면서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어 걱정이 들었지만 비 내리는 후에 거리를 돌아보고 싶었다. 은근 낭만적이지 않은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우리는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후에를 만나러 출발했다. 빗줄기가 그나마 약해진 것이 위안이었다.
후에는 응우옌 왕조가 있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강을 건너자 바로 후에 왕궁이 눈에 들어왔다. 찬란한 역사를 꽃피우고 프랑스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이 곳 후에 곳곳에 남아있었다. 비에 젖은 도로를 타고 후에 왕궁 성벽을 따라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많은 후에 사람들이 우비를 입고 길을 재촉하고 있었고 인력거꾼들도 장사를 접고 한쪽 구석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있었다. 비에 젖은 돌담은 더욱 색이 진해져서 비로 씻겨져 더욱 환해진 하늘과 함께 눈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비가 오는 날에 오토바이는 색다른 경험과 풍경을 나에게 선사해주었다. 물론 위험하니 속도는 늦추고 천천히 달렸다. 운전하는데 조심해야 하니 풍경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지만 빗줄기과 바람을 맞으며 달리던 추억은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왕궁뿐만 아니라 후에 시내도 둘러보았다. 딱히 길을 정하고 가는 것 아니라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갔다. 그러다 보니 기차가 지나는 걸 보기도 했고, 멋진 강변을 따라 몰아보기도 했고, 후에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식당을 발견하기도 했다. 비가 그치고 우리는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맥주 한 잔을 하며 드라이빙을 마무리했다.
"후에 해변 보러 가자"
다음날 아침에 왕궁을 둘러본 우리는 일몰을 구경하러 후에 해변을 가기로 했다. 구글 지도로 보니 후에 시내에서 15Km 떨어져 있어 오토바이로 충분히 갈 만한 거리였다. 우리는 구글 지도로 해변을 찍고 무작정 달렸다. 시내를 벗어나자 도로도 넓고 오토바이도 적고 날씨도 맑아서 속도 내며 드라이빙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빙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도 풀리고 속이 시원함을 느꼈다. 베트남 오시면 오토바이 추천합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 구글 지도에 의존해야 했다. 구글 지도는 큰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빠른 길을 가르쳐 주어서 자꾸 숲길이나 마을 사이로 들어가곤 했다. 덕분에 나름 기묘한 여행이 되었다. 특히 염전 마을을 지날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는데 염전에 반사된 해와 하늘 때문에 잠시나마 위와 아래가 구분이 잘 안 되는 멋진 풍경 사이를 오토바이로 지나가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길이 좁고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던 터라 사진을 못 찍고 눈으로 담아온 것이 아쉬웠다.
일몰 시간 30분 전에 목표로 했던 해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글에서는 35분이면 갈 수 있다고 나왔는데 길을 헤매고 돌아가고 하면서 거의 50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도착한 해변은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한쪽에는 축구를 하고 있었고, 모래찜질을 하거나, 수영을 하고 일몰을 바라보며 맥주 한 잔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커플들, 가족들, 친구들, 회사에 온 듯한 사람들, 관광지가 아닌 베트남 사람들이 즐기는 곳에 우리가 몰래 찾아온 느낌이었다.
일몰을 구경하고 근처의 해산물 식당에 들렀다. 후에의 해산물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산물 마니아였던 B형 덕분에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주문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해산물 주문할 때만큼은 현지인의 느낌이 날 정도였다. 덕분에 맛있는 해산물과 후에 지역 맥주인 후다와 함께 후에의 마지막 밤을 해변에서 보내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때는 더욱 조심하며 돌아갔다. 어두운 데다 가로등도 많지 않아서 라이트 불 빛에 의지하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큰길 위주로 길을 잡아서 30분 만에 후에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에에서 오토바이 여행은 우리에게 새로운 추억을 안겨주었다. 더군다나 우리만의 추억이라 더욱 값진 느낌이 들었다. 마음 가는 대로 길을 갈 수 있었고, 전혀 새로운 풍경을 보았으며, 경외감이 드는 풍경을 만났고,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곳을 스스로 갈 수 있었다. 핸드폰을 끄고, 블로그를 끄고, 주변의 추천을 끄고 떠났던 여행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의 일정이 되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