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생활 에세이
동남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무더위와 비다.
특히 건기와 우기로 극단적으로 나뉘는 기후 특징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 우기는 4월부터 시작되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9월과 10월에 가장 많이 내리고 11월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 그쳐버린다. 비가 한 달에 몇 번 오지 않는 건기가 시작된다. 연평균 기온이 거의 일정한 호치민에서는 여름과 겨울을 나누기보다 건기와 우기로 계절을 나누는 것이 더 올바른 구분으로 보인다.
베트남에서 생활하면 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1년의 반이 우기이기 때문이다. 매일 최소 1번은 비가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쩔 수 없이 비와 함께 해야 하지만 나는 비가 정말 싫다.
베트남에 와서 비가 싫어진 게 아니다. 원래 한국에서부터 비를 싫어했다. 고백하자면 몸이 축축한 게 싫었다. 태어날 때부터 다한증을 겪고 있었기에 손발은 항상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런데 비만 오면 그 축축함이 배가 되었다. 끔찍하다. 축축한 것이 취향을 넘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세상에서 가장 많이 비를 만날 수 있는 지역에 생활하게 된 것이다.
미운 정도 들다 보면 정이라 했던가.
지독히도 싫은 비가 2년 이상 투닥거리다 보니 어느 정도 공생의 길을 걷는 것 같다. 더불어 베트남에서만 볼 수 있는 우기의 생활상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비는 여전히 싫지만 비라는 존재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산 찾아 삼만리
베트남에서 비가 올 때 우산을 쓰고 있으면 높은 확률로 외국인일 수 있다. 오토바이가 생활화되어 있는 호치민에서 외부 이동에 오토바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정말 가까운 거리가 아니면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 우산이 필요가 없다.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우산을 사용하는 경우는 있어도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쓰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편의점에서 우산을 찾기도 어렵고 있어도 종류가 제한적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나 관광지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우산은 보이지도 않고 우비만 잔뜩 볼 수 있을 것이다. 특이한 광경은 비가 올 때 길거리 노점상의 풍경이다. 한국에서 비 오면 여기저기 길거리 노점상에서 우산을 파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반대로 베트남에서는 우비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노점상을 볼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우산을 쓴다. 왠만한 거리는 걸어가고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그랩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랩 오토바이는 승객용 우비를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비가 올 때는 아예 이용을 안 하는 것을 추천한다. ) 언제 어느 때 내릴지 몰라서 기본적으로 가방에 항상 우산을 소지하고 있다.
비 올 때는 커피 한 잔
베트남의 비는 한국과 조금 다르다. 매우 국지적으로 내리는 데다 짧게 내린다. 그렇기에 비가 거세게 올 때는 그냥 커피 한 잔 하면서 잠시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다.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바로 옆 동네는 비가 왔는지도 모르게 땅이 말라있기도 하고, 30분만 지나면 비가 급속도로 약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기 때는 특히 한국의 빨리빨리보다 잠시 숨을 고르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불안해하지 말고 일상의 휴식을 부여하자.
우기 때 그랩의 추억
어느 더운 날, 그랩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분명 그랩을 탈 때만 해도 괜찮던 하늘이 중간쯤 이동했을 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그랩 드라이버도 조금씩 강해지는 빗줄기에 나에게 우비를 주고 서둘러 우비를 입었다. 그랩은 우비를 승객 용도 제공하는데 꽤 퀄리티가 높아서 쓸 만하다. 상체와 바지까지는 가리더라도 신발은 다 젖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우비로 완전무장하고 다시 빗 속을 질주하고 시작했다. 처음으로 비를 맞으며 그랩을 탔다. 처음에는 견딜만하던 비가 갑자기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을 때 아프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눈을 뜨기도 힘든 무거운 비가 아플 정도 내렸다. 그 와중에 운전하는 그랩 드라이버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멀쩡한 옆 동네
베트남에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바로 옆 동네는 멀쩡하다는 점이다. 1군에서 2군까지 가야 하는 일이 있었다. 1군에서 2군으로 가려면 중간에 빈탄 군을 지나야 하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길이다. 1군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폭우가 쏟아졌고 나는 드라이버에게 말해서 비가 그치는 것을 기다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에 너무 거센 비였기 때문이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다행히 비가 약해졌고 다시 우비를 쓰고 움직였다. 그런데 바로 옆 동네인 빈탄 군에 들어서자 도로가 말라있는 것이다. 이곳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화창한 날씨였다. 우비를 쓰면 더웠기 때문에 다시 우비를 벗고 2군으로 향했다. 빈탄에서 2군으로 들어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다리를 건너는 도중 다시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야속한 비 같으니라고. 다행히 비가 약해서 그냥 맞고 갔지만 기묘한 추억 었다.
또 집에 가던 중 강 건너 옆 동네에서 천둥 번개가 치고 있었지만 내가 있는 지역은 전혀 비나 번개가 치지 않는 광경도 목격한 적이 있다. 조금씩 옆으로 이동하며 가까이 오는데 이게 참 엄청난 스릴감을 준다. 제발 내가 있는 지역에 천둥번개와 비가 떨어지지 않기를 빌기도 했다. 스릴만점 여행이 아닌가. 언제 비가 떨어질지 모르는 그 스릴감은 한국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슬리퍼 신고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을 자세히 본다면 쪼리나 슬리퍼 혹은 샌들을 신고 타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우기 때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본 경험으로 옷과 머리는 비를 피해도 신발까지는 비를 피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신발은 비로 축축이 젖어버렸다. 또한 인프라가 열악한 베트남에는 도로가 물에 잠기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물에 잠기면 발을 중간까지 들어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비 오면 맥주가 1+1
비가 하도 오락가락 오는 곳이다 보니 이색적인 이벤트도 볼 수 있었다. 우연히 들렀던 펍에서 우기 시즌에 비가 오는 날에는 맥주를 1+1 한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신선했던 것이 언뜻 보기에 꽤 매력적이지만 비가 짧게 내리는 데다 매우 국지적으로 내리기 때문에 비 오는 때에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홍보 효과는 톡톡히 할 수 있으니 잘 활용한다면 좋은 이벤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6월,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다.
지금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비를 갑자기 만나서 쫄딱 젖었기 때문이다. 상당히 감정이 실린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그렇게 비가 싫지만 집 안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좋아한다. 커피 한 잔 까지 하면 금상첨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