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막막하다.
책을 좋아해, 스트레스를 독서로 푸는데도 책을 보자마자 막막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저자 프리드리히 니체
철학의 철자도 모르는 내가 니체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뇌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켰나 봅니다. 책을 펼치기가 이렇게도 힘들었던 책은 총 균 쇠 이후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지금도 다 못 읽었습니다. )
책을 집어 들고 몇 일만에 첫 장을 펼쳤습니다. 첫 장을 펼치는데 큰 용기가 필요한 책입니다. 책의 서문을 항상 먼저 읽기 때문에 서문부터 보았습니다. 어라? 생각보다 읽어졌습니다. 서문은 인간미가 있나 봅니다. 읽을 만한데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훈련소 한 달 하고 군대 전부 안 것처럼, 예고편만 보고 영화를 다 해석한 것처럼 서문을 지나 1장을 읽는 순간 저의 작은 자신감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저는 니체가 자기 전에 쓴 글인 줄 알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학시절 전공교수님 수업이 떠올랐습니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이 모든 생각과 느낌은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임을 밝힙니다. 철학의 철자도 모르지만, 혼자 단정 지어 버리는 짝사랑 같은 느낌이지만, 느낀 그대로 이 책의 후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먼저, 가장 인상 깊었고 이 책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던 구절을 소개할 까 합니다.
" 이 책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은 무거운 의무의 압박이 없는 사람들에게 알맞다. " - 서문, 마지막 구절.
서문의 마지막에 있는 글인데, 니체도 자기 글이 어려운 줄 알고 있었나 봅니다. 일부러 어렵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는 순간 무겁던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매우 어려웠고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곳곳에서 나를 맞이해주었지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서문의 마지막 구절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도 그렇게 읽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시간 많은 한량들이 아니면 읽지 말라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문을 읽었을 때, 인상주의가 생각이 났습니다. 인상주의는 사실적 묘사를 중시하는 기존의 질서 대신 개인의 감정과 느낌을 그림에 표현했습니다. 현대 미술의 시초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인상주의는 묘하게도 니체의 글에서 느껴졌습니다. 니체를 찾아보니 이 책의 발간 연도는 1870년입니다. 인상주의가 시작된 해는 보통 1850년으로 보고 있다면 니체와 인상주의 사이의 공통점을 내가 느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서문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유"와 "의지"입니다.
"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가치를 바로 세우려는 힘과 의지가 만드는 이 최초의 촉팔, '자유로운' 의지를 향한 이 의지 " - p. 18
" 정신의 그 '원숙한' 자유... 중략.. 그렇게 넘쳐흐르는 힘은 자유정신으로 하여금 '시험 삼아' 목숨을 걸고 모험에 몸을 내 맡겨도 좋다는 위험스러운 특권을 부여한다. 그것은 자유정신의 거장다운 특권이다. " - p.19
"자유정신은 천천히, 거의 반항적으로, 거의 의심하듯이 다시 삶에 다가간다. " - p.19
서문은 책을 소개하고 책을 지은 동기에 대해 짧게 쓴 글입니다. 일종의 책의 예고편이자 책의 방향성을 이야기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서문에서는 자유의지가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인상주의를 느낀 건 니체의 반복 세뇌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이젠 그만하자, 자유정신은 어떠한 '그대는 해야만 한다.'에 자신이 복종해 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이 '가능한지, 비로소 무엇을 '해도 좋은지'를 이제는 '알고 있다. ' - p.21
모든 장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1장 최초와 최후의 사물에 대해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아마도 항상 책을 1장만 읽고 덮는 그간의 경험이 1장을 가장 집중해서 읽게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점성술은 별이 총총한 하늘이 인산의 운세를 둘러싸고 도는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도덕적 인산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관련되는 것이 사물의 본질이자 핵심이어야만 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 - p.27
1장에서도 인간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닙니다. 주인공이 나오기 전에 교통정리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합니다. 자유의지를 말하기 전에 전제되어어야 할 이야기. "기존의 질서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인간에게 삶과 경험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그림은 점진적으로 '생성되어 온' 것이고, 뿐만 아니라 아직도 전적으로 '생성' 과정에 있으며, 그 때문에 그로부터 창시자(충족 이유)에 대한 추론을 하거나 그것을 부정해도 될 만한, 확정된 크기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34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에서 영혼의 고민, 내면적 타락에 대한 탄식, 구원에 대한 걱정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것은 모두 이성의 오류에서 생기는 표상들이며, 그런 것은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없어져야 마땅하다. " - p.43
그리고 1장 28번 전체에서도 다루고 있다. 매우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 모든 신학과 그 투쟁을 제외하면 세계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하물며 최선도 최악도 아니다. 이러한 '선', '악'의 개념은 인간과 관련지었을 때만 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양식에서는 정당하지 않다. 어쨌든 우리는 모욕적이거나, 찬미적 세계관에서 탈피해야만 한다. " - P44
니체는 대학시절 신학을 버렸습니다. 목사인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가 신학을 버린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를 전면 부정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 중심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최고다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역시 철학자 다운 모습입니다. 1장부터 머리가 아파옵니다 .
" 만능이라고도 '보였던' 것인데, 사실은 공허한 것, 즉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 - P.35
" 아직도 우리는 근본적으로 모든 감각과 행위는 자유의지의 작용이라고 믿고 있다.... 중략... 우리는 배고픔을 느끼지만 본디 유기체가 유지되는 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 느낌은 '이유도 목적도 없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중략... 의지의 자유에 대한 믿음은 모든 모든 유기체의 근본적인 오류며, 논리적인 것의 움직임이 그에게 존재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낡은 것이다. " - P.37
니체는 '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무려 신을 부정하면서도 인간이 사실은 부질없는 유기체에 불과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갑자기 허무주의가 확 다가오는 느낌이 듭니다. 인간의 기원을 찾아 그 끝까지 갔을 때 사실은 별 거 없었어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이런 기분일까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을 때 역시 이러한 허무주의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니체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질없는 유기체를 더욱 신기하고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데스노트의 사신 류크가 생각나는 군요. '역시 인간은 재밌어.'
" 사람들이 인습에 묶여 있지 않을수록 그만큼 동기의 내면적 운동이 커지고, 그에 따라 또 외면적인 불안정, 인간의 뒤얽힌 범람, 지향성의 다성음악도 그만큼 커진다. " - P. 40
" '오류'가 인간을 종교와 예술과 같은 꽃을 피우게 할 만큼 깊고 부드러우며, 상상력이 풍부하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 - P.45
"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로부터 보다 많은 것을 바란다면, 그는 호의적으로 고객을 흔들면서 자신의 형제, 즉, 행동의 자유인에 대해 말해줄 이다. 아마 얼마쯤 비웃음도 띨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자유'에는 나름대로 특별한 사정이 있으므로" - P.49, 1장 마지막 구절
니체의 서문을 읽고 인상주의 생각이 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만, 그는 기존의 질서를 대신해 "자유의지"라는 개개인의 자유를 새로운 질서로 내세웠습니다. 당시 모든 이들이에게 외면 받은 인상주의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게 생각 한 점이 있다면 1장의 제목이 최초와 최후의 사물에 대해서입니다. 기존의 기독교의 이분법적 논리, 선과악, 천국과 지옥, 문명과 비문명, 당시의 이분법적인 논리를 철학적으로 함축한 멋진 제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신은 죽었다. "
니체가 유명한 이 명언은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왔었습니다. 한 번도 왜 니체가 이런 말을 한지 몰랐으나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니체의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개인의 생각에 의한 해석이므로 기존의 니체 해석들과 다를 수가 있습니다. 다른 관점의 의견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겠습니다.